방금 할매 선생댁에 다녀오는 길이다 친구가 졸업을 해서 이틀후면 여기를 떠나는데 그녀의 멘토이자 나의 멘토이기도 한 선생의 초대로 방문하게 되었다 왠만해서 학생들을 집으로 초대하는 일은 안 하시는 분이라 너희는 특별한 경우야, 라는 것을 거듭 강조하시면서 어제 막 휴가를 마치고 돌아와 건강하게 태닝된 얼굴로 우리를 맞으셨다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조용한 동네인데 그곳 역시 연세든 양반들이 많이 모여사는 곳이었다 집 안쪽으로 쭉 들어서면 넉넉한 테라스와 무성한 나무들이 눈을 시원하게 했다 집안 곳곳 5-60년대 스타일의 가구들과 한 벽 그득하게 들어선 책들 모든 식기구가 가지런히 놓여있고 벽마다 선생 본인의 작업들 동시대 활동했던 예술가들의 작업이 이유있는 배치로 들어차 있었다 테라스로 자리를 옮겨 차와 케이크 화이트 와인과 빵을 겻들인 점심을 내주시고는 이것저것 물으시다가 또 본인의 이야기를 한창 늘어놓으시는 선생. 집 전체가 그녀 자체처럼 느껴졌다. 2층의 침실과 작은 작업실을 둘러보다가 다락방으로 연결되는 문을 열고 들뜬 아이마냥 특별히 보여주는 거야, 라고 키득거리시면서 앞장섰다 내 키보다 약간 더 큰 높이의 천정아래 있는 넓직한 다락방이자 그녀의 개인 작업공간이었다 아, 하고 탄성 비슷한게 새어나왔는데 지난 30년간 해온 작업들이 주르륵 하고 펼쳐져있었다 한참을 이것저것 가리키시며 흥분된 어조로 설명을 마치시더니 약간 지친기색이 드러났다 아이없이 남편과 두분이서 이 집에 사신지도 25년, 모든 공간에 그녀의 흔적과 작업들이 강렬하게 숨쉬고 있었다 철없이 돈벌 생각 안하다가도 이런 순간에는 마음을 대번 고쳐먹게 된다 그래 언제까지나 당장 내일 떠날 사람처럼 살 수 없을 것이다 게다 모든것이 갖추어진다한들 단칸방이라도 혼자서 지는 해를 바라보고 싶지는 않다 내가 저 나이가 되었을 때. 스스로 자신이 가장 중요하고 작업에 온 열정을 쏟아붓는 선생의 집조차 사람 온기가 돌았다 6살 때 입었던 드레스부터 지난 주까지 전시했던 작업물까지 시간이 흘러가는대로 두고 지켜보려면 집과 남편이 있어야 하는건가 글쎄 그보다 자기 자신이 있어야겠지 자신을 놓치않는 그 힘이 가장 중요하겠지 문을 나서면서 내 양 어깨를 붙들더니 너무 긴장하지 마 그래도 내년엔 너가 있어서 다행이다 잘 해보자, 라고 집을 나섰다 언제나 이 선생을 만나고나면 뭐에 홀린듯한 느낌을 떨칠 수 가 없는데 실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기운을 뺏긴건지 쓸데없는 기운이 빠져나간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