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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알바 아니지만

Day_dreaming 2011. 9. 2. 19:50

이른 아침 걸려온 전화한통.


여보세요?

네.

거기 현규 학생집 아닌가요?

잘못거셨는데요.

네, 죄송합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2시 20분. 창밖으로 아침 햇살이 기어들어오기 시작하는 그 때, 퍼뜩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에 손목시계를 집어들었다. 아침 7시 20분. 재차 확인해도 같은 시간.


한국에서 만들어온 인터넷 전화는 내가 어디서 전화를 켜든간에 정상기능을 할시 한국시간으로 표시된다. 그러니 서울로부터 7시간 떨어진 이곳 암스테르담에서 전화를 걸든 받든간에 전화기는 꿋꿋히 한국시간을 기준으로 통화기록이 만들어진다. 현규학생을 찾던 전화통 너머 여자도 내가 한국이 아닌 이곳에서 전화를 받았다는 사실을 상상치도 못할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그 여자가 상관할바 아니다. 여자는 현규 학생을 찾기위해 전화를 건 것이다. 잠이 덜 깬 내 목소리를 듣고 대낮에 여즉 잠이나 퍼질러자고 있는 백수아니야, 라는 생각을 하는게 되려 자연스러운 일일수도 있다. 


그런데 이 기묘한 기분을 떨칠 수 가 없다. 귀로 파고드는 낯선이의 목소리, 그리고 또박또박 들려왔던 한국어. 나는 갑자기 다시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현규학생을 왜 찾느냐, 당신과 현규학생이란 사람과는 어떤 관계냐, 라고 되묻고싶다. 나는 지금 당신이 있는곳으로부터 7시간 떨어진 도시에서 살고있으며, 왜 나에게 이런 전화를 걸어 아침부터 머릿속을 뒤죽박죽 만들었는지 따져묻고싶다. 순전히 전화번호를 착각해서 혹은 혼선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예요, 따위의 변명을 듣고 싶지 않다. 분명히 우발적인 상황에서 늘상 벌어질 수 있는 상황임이 분명한데 나는 왜 이렇게 흔들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는지 모르겠다. 그리곤 무언가가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이 정말 잘못인 건지, 잘못이라면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고싶을 뿐이다.


나는 전화를 두려워한다. 낯선이와의 통화는 그 불안감이 더욱 가중된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대화는 늘 긴장을 주기 마련이지만 더욱이 전화선 너머로 미세하게 전달되는 목소리의 기운, 단어의 쓰임이 매우 신경쓰인다. 그렇기 때문에 되도록 분명한 용무가 아닌 이상 통화를 매우 꺼리며 되도록 빠르게 대화를 마무리 지으려 애쓴다. 반대의 경우, 애인과의 통화는 문제가 더 복잡하다. 귀로부터 들려오는 상대의 목소리는 너무도 선명하며 나에게 말을 하고있다는 사실은 분명한데 나는 지금 그를 만질 수 없다, 더듬을 수 없다. 보이지않는 전파의 신호로 우리의 관계를 희미하게 붙잡을 수 밖에없다. 때론 전화기를 집어들기조차 겁이 난다. 그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간혹 전화를 받기 곤란할 수 도 있고 나 아닌 다른것에 골몰해야하는 시간일 수 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화는 내가 원할 때 바로 집어들 수 있지만 수신자의 상태를 전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에 매번 망설여진다. 나에게 모든 상황이 허락되지 않은 것처럼, 그의 시간을 뚫고 들어가 내 마음대로 그의 목소리를 내 귀에서 울리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시간을 엄격하게 분리하여 네 시간 내 시간 거기 시간 여기 시간 쓸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나는 이 도시의 시간이 여전히 낯설다. 아침에 해가 뜨고 볕이 들어 자연스레 잠을 깨는 날이 극히 드물다. 낮 동안은 대부분 시간 거센 바람과 간간히 쏟아져 내리는 빗줄기를 그저 바라보며 밤을 기다린다. 저녁이 올 즈음 거짓말같이 해가 떠오르고 그 기세는 밤 9시까지 이어진다. 백야상태랄까, 혹은 내가 어떤 시간조차 가늠할 수 없는 중간지대에 있는 것일까. 장시간 비행기를 탈 경우, 항공사에서는 너무나 친절하게도 끼니때마다 밥을 주고 도착지 시간에 적응할 수 있도록 승객들을 억지로 잠을 재우는 엄마노릇을 한다. 몸은 비행기 안에 갇혀있는데 나는 이미 출발지를 떠나 어느 상공위를 떠돌고있는 것이다. 그 기묘한 시간의 순간, 나는 늘 일기장에 어떤 시간대를 적어야할지 망설여진다. 몸은 급속도로 적응하기위해 안간힘을 쓰고 나는 결국 탈진한다. 눈뜬 상태에서 유령처럼 이 도시를 떠돌기도한다. 습관적으로 시간을 확인하는 나를 보더니 누군가 너무 깐깐하다는 식의 너스레 웃음을 보낸적이 있다. 몸과 마음 둘 다 생체리듬이든 심리적 리듬이든간에 균형을 잡기위해 발악을 하는 것이다. 더 이상 두고온 곳의 시간으로 살아갈 수 없고, 사람들을 불러낼 수 없다. 모두가 다 스스로 감내하고 맞춰가야하는 시간, 그 삶속에서 오늘도 갸우뚱 거리고 있는 것이다. 망할놈의 그 전화 한 통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