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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_dreaming 2012. 7. 19. 21:29

의례 머릿속 회로와 실제 벌어지는 상황이 틀어지기 마련인데 그 순간을 잘 못견뎌 여전히 숨이 가빠져오는 것이다 그래서 나들이니 나발이니 다 집어치우고 집에 돌아오는 길 어디서 그런 생각이 튀어나왔는지 나도 모르게 전화통을 붙잡고 하소연을 시작했다 그러다 그럼 만날까, 하는 말에 바로 약속을 잡고 그렇게 밤이 지나갔다

태풍이 불어닥친다는 말이 오늘 새벽까지는 믿어의심치 않았다 오랜만에 강렬한 빗줄기가 창문을 두들기는데 기세가 대단했다 결국 오늘 하루는 찌부러져서 얌전히 있어야겠군 할 즈음에 몇 분이 지나갔고 그 새 하늘도 변덕을 부려 날이 쨍하고 개었다 며칠전 지나가는 말로 엄마에게 놀러나가자고 한 것을 나는 날씨를 보며 마음속에 미룬참이었는데 엄마는 그 새 머리에 구루프를 돌돌감고 손바닥 만한 거울을 들여다보며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어디가, 네가 놀자매, 아, 그래 또 그렇게 엉겹결에 씻고 길을 나섰다 우산은 챙겼지만 비는 올 것 같지 않았고 그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지 모르다가 친구들이 보라고 이야기해준 전시가 생각나서 거창한 이름의 갤러리에 도착했다 매표소앞에서부터 날렵한 힐을 신은 여자 몇이 구석에 모여 담배를 뻐끔거릴 때 천원짜리를 줄줄 꺼내서 티켓을 사고 들어갔다 나도 실은 처음 이름을 들어본 작가라 엄마에게 뭐라 설명할 줄 것 도 없고 그냥 잠자코 있었다 빠르게 팜플렛을 읽어내서 핵심을 두서없이 설명했지만 엄마는 내 이야기는 뒷전이고 바닥에 늘어선 사탕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직원 하나가 다가와, 아 이거 드셔도 되요, 라고 해서 엄마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더니 가만히 들여다봤다 그리고는 쑥쓰러운지 고개를 팽,하고 돌렸지만 엄마가 볼 것은 없었다 한 마디로 엄마는 읽어낼 수 있는 문자와 이야기들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 공간에서는. 나는 생전하지도 않은 짓을 했는데 벽에 엄마를 세워두고 핸드폰을 꺼내서 사진을 찍었다 나란히 한 장 엄마만 세워두고 한 장 벽 뒤에 잔뜩 영어로 쓰여져있는 것을 대충 말해주다가 귀찮다는 듯 다시 사탕쪽으로 고개를 돌려 우리는 가까이 다가갔다 사라진 연인에 대한 이야기래, 나도 잘 모르겠지만 아 그래, 하나 먹어볼까, 나는 몸을 굽혀서 사탕 하나를 집었고 엄마는 그 자리에서 애처럼 까먹었다 사탕 무데기 앞에서 엄마를 또 세워두고 기념사진을 한 장 찍었다 전시장을 빠져나올 즈음 손끝에 퍼런 커튼이 걸렸던 모양인데 그것도 모르고 있다가 직원한테 한 소리 들었다 그것 만지시면 안돼요, 아, 네. 나는 허연 벽들을 통과하면서 되도 안되는 말을 짓거리기 시작했다 다들 모르는데 아는척 하면서 고개 끄덕이는거야 재수없지 뭐, 엄마는 나의 반응에 약간 놀라면서도 통쾌해했다 나는 엄마에게 또 되도 안되는 말을 짓거렸다 그니까 나는 엄마가 좋아할만한 것을 만들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