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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믿을 수 없으면, 단 한 사람이라도

Day_dreaming 2012. 2. 6. 21:08
뭐 하나 끝났다 싶으면 바로 다음것이 달려들어 되새김이니 자기성찰이니 하는 시간없이 달려온 내 삶이 싫어서 좀 천천히 살아보자, 해도 그건 여행지에서 말간 노을 들여다보며 약간 취기 오른 상태로 생각에 잠기다 비행기 타고 집에 오는 순간 모든 시간이 다시 원래의 속도로 돌아가는 것 처럼, 아 답답허다. 잡생각이 많고 진득하지 못하니 주절주절 부연설명이 늘어나고 허나 이 조차도 끄적거리며 살 수 없는 지난 며칠간이었다. 갑자기 모든 문자들이 생경하고 원래도 우물쭈물거리다 머릿속으로 완벽한 문장을 만들어낸 후 토하듯 쏟아내고 자리를 뜨기 일쑤니 학교에서 돌아와 이제갓 너댓시밖에 안되었어도 무진장 피곤했다. 지난 학기와 다르게 너무 학교를 열심히 가는건가, 말같지도 않은 생각을 하다가 집에 들어앉아있으려니 불안증 도져 또 손가락이 벗겨질 정도로 방역을 하고 피곤해 쓰러져잔다. 때때로 귀여운 룸메이트의 인사를 받으며, 어쩜 저리 천진난만한가 라는 생각이 들 때면 늙어버린 내 손과 얼굴에 또 다시 서글픔이 밀려온다. 누구 한 사람이라도 그래, 그래 한 마디만 해주면 괜찮을 것 같은데 옆 사람은 나에게 정직하지만 냉철한 의견으로 고만하란다, 그래, 누군들 하고 싶어서 하는거냐, 할 수 밖에 없어서 하는거지.

흥은 지나치면 화를 불러오기 마련인데 흥이 나기도 전에 병이 하나 깨졌고 새벽에 화장실 가려다 언제 밟았는지 모르게 조각 하나가 발 바닥에 스며들었다, 말 그대로 증발했다,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통증에 둔한 편이라 약은 끔직히 싫어하고 참으면 되겠거니하다가 생살을 도려내려 하는 순간 그 사람의 만류로 결국 병원에 다녀왔다. 젠장할 보험 커버된다해도 뭐시기 딱 두 번, 발을 주물러주더니 250유로를 내란다. 어휴 어쩐지 다들 그렇게 친절하고 살랑거린다 했다, 라는 생각부터 드는 내 자신이 또 너무 싫어서 메트로 한 복판에서 소리 지르며 또 한 판 싸웠다. 이제 그만하라고, 언제까지 누군가가 너를 도와주길 기다릴 거냐고, 나도 안다고, 그러니 제발 그만좀 혼내.

칼 바람 맞고 정신을 좀 차리니 어느새 집에 왔는데, 요며칠 내린 눈 때문에 바닥은 꽁꽁 얼어붙었고 동네방대 아이들은 꺅꺅 소리를 지르며 운하위에서 스케이트를 한창 타고있었다. 볕이 너무 강해 눈 근처를 가다가 금새 화이트 아웃 현상을 겪을터 군말없이 장바구니를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사랑받고 싶어하면서도 끝끝내 완벽하게 기댈 수 없다라는 것을 그로부터 들었다. 내가 온전히 누군가에게 기댈 수 없다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있다, 아마 아주 어릴 때 부터였던 것 같다. 편가르며 살 수 도 없거니와 남의 편 되어주지 못하면 내 편도 못 만드는게 당연지사인데 요즘엔 왜이렇게 서럽고 찡얼거리는지 스스로 미치고 팔짝 뛰겠다. 그러니 고인말들 속에 쓸말한 것들을 골라내기 어려운 법, 다 쏟아내고 또 갈증나면 눈물을 글썽거리는 이 다섯살 짜리 심정, 이러면 모두가 다 떠나간다는 것쯤은 아는데, 그러면서도 잘 안된다. 더 잠자코 있어야 하는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