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와 이런말을 하는 건 참 뭐하지만-우습다 창피스럽다 라는 말도 별 무게감이 없게 느껴진다-공부를 정말 안했구나 깊은 자괴감이 든다 바이링궐인 친구중 하나가 내 책들을 쭉 훑어보더니 한 마디했다 외국소설을 읽는다해도 원서로 읽지 않으시는군요, 결국 이것도 한글로 번역된 것 아닙니까, 하고. 그때는 별생각없이 흘려들었는데 어제밤 별안간 그 생각이 다시 스치면서 곧 써야할 논문과 주제와 해야 할 일들이 줄줄이 있는데 난 뭐하자고 공부는 안하고-특히 외국어-이렇게 드립다 읽는다고 착각에 빠져 하루하루를 보낸걸까 하는 깊은 한숨이 밀려왔다 해서 그가 주고간 두권의 책-공교롭게도 영어로 된-것을 교과서삼아 강독과 번역을 하자라는 결심을 하게되었다 샤워를 하면서 머릿속의 대략 일정을 짜고 하루에 최소한 다섯장은 제대로 읽고 한글로 번역을 해보자는 심산이었다 마치 초등학생 시절로 돌아가 방학계획표같은 생각을 머릿속에 그려놓은 것이다 해서 야심찬 마음을 가지고 잠이 들었다
한 시간이 지났을까 기껏 서문의 반도 못하고 낑낑대고 있는 내 자신이 한심하고 짜증스럽게 느껴졌다 어쩌면 이 도시에와서 내가 입을 다문것은 다름아닌 언어의 문제였는데 그것은 아주 그럴듯한 핑계이고 실은 내가 잘 하지 못하는 내 실력을 적당히 감추기위한 방편이었다는 것을 절절히 깨닫게 되었다 외국물좀 먹으면 그래도 그 나라 말은 제법하고 돌아올 줄 안다고 생각했던 내 자신이 대체 한 것은 하나없고 그저 몸뚱아리만 한국밖을 벗어난 것 뿐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가 커져버려서 쉽사리 배움의 속도는 늘지않고 똥고집과 적당히 넘어가며 살았던 것은 아닐까 자문하게 되는 것이다 테스의 최초 한글 번역을 백석이 했다라는 사실, 그리고 대부분의 20세기 초 예술가들은 자의든 타의든간에 2개 이상의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했다라는 사실, 몸은 방안에 있어도 유럽과 영미권 작품들을 척척 읽어내며 끊임없이 공부하고 또 공부했던 많은 예술가들 해서 더없이 자유로운 상상과 견해를 온몸으로 체득했던 사람들을 떠올리자니 정말 할 말이 없다 정직성이외에 들이댈 조건이 무엇이냐 말이다 머리에 똥만 차서 그럴듯한 생각이나 취미로만 살고있는 것 아닌가 싶은거다 다행히 허영심은 별로 없는 편인데 이것도 조심해야지 잘 모르니까 무섭고 두렵고 결국 내것이 아니다 치워버리는 갇힌몸과 머리를 달고 사는건 아닌가 싶은거다 대단한 작업을 위해서가 아니라 최소한의 예의 즉, 내 자신과 작업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위해서라도 공부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느낀다 결국 또 행동하기 전에는 결국 자학으로 그칠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