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을 나갈 필요가 없다 / 그냥 너의 테이블에 앉아서 귀를 귀울여라 / 아니, 귀를 기울이지는 마라, 그저 기다려라 /
기다리지도 마라 / 조용히, 움직이지 말고 고독하라 / 세상이 자유롭게 자신을 너에게 제공할 것이다 /
가면을 벗기 위해서라면 다른 선택이 없다 / 세상이 기쁨에 가득차서 네 발 밑으로 굴러들어올 것이다.
프란츠 카프카.
너무 오랜만에 '어떤' 미술 매거진을 봤다.
대단히 유명한 퍼포머의 동향을 소개하면서
그 작가가 몇 년전에 발간한 도록의 첫 페이지에
삽입된 저 카프카의 문장을 발견했다.
어릴 때는 센치한 감정이 찾아오다가도
곧 몸을 움직이고 다른곳에 정신이 팔리면
그 감정이 금방 사라지곤 했다.
나이들고 나니 어떤 한 가지 감정, 주제, 기조가
마음속에 쉽게 들어차지 않고,
행여나 한 번 들어차면 그것으로부터 스스로 헤어나오기 힘들어서
밀쳐내고 아닌 듯 버티기 일쑤다.
나한테 너무 심각하다고 생각한 어떤 문제상황에서도
너무나 우습고 슬프게 배도 고프고 졸립기도 하단 말이다.
그런 물리적인 반응들이 이 순간에도 작동되는 것을 보면
내가 덜 진지한건가 자책하기도 한다.
어제 하루는 나 한테 상주는 기분으로 하루 쉬었는데
날이 어둑해지고 온몸에 한기가 느껴기지 시작할 때 부터는
벌서는 느낌이 들었다.
쉬는 것도, 무언가 가만히 있는 게 나는 늘 불안하다.
몸을 막 굴리면서 바퀴질을 열심히 끝까지 한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또 막상 잠시라도 가만히 있는 시간이 생기면 텅빈 느낌이다.
주부들마냥 하루종일 생산적으로 바쁘게 살지도 않으면서
머리속에 산더미 같은 생각들로 스스로 괴롭히고 있는지 모른다.
그놈의 생산성이라는 말 자체가 지긋지긋하기도 한데
뭔가 집요함이 필요한 것이다. 집, 요, 함.
제주에 있었던 보름 동안은 한 번도 화난적이 없었다.
서울에 와서 다시 화가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 방문이 나한테 너무 무심하다고 느끼면서도
부서지지 않고 견고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부수고 나가서 소리치고 시끄럽게 만드는 건 이제 싫다.
문 안쪽에 있다고 해서 두렵거다 괴로운 심정은 아니다.
막연히 어떤 세상이 굴러들어올거라고 목놓아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걱정들 마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