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예기치않게 하루종일 누군가의 보호자로 병원에 있다보니 다시금 내가 절대로 마주하고 싶지않은 종류의 인간상들을 떠올리게되었다. 어른 아이 남자 여자 큰자 작은자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이 놓인 자리로 인해 발생된 권력을 천박한 방식으로 상대들에게 휘두르는 것. 보다 교활해지고 막무가내라는 인상을 지울 수 가 없다. 병원은 언제나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곳이지만 적어도 그 곳을 삶터이자 일터로 일하는 사람들의 성정에 대해 질문할 수 밖에 없다. 돈 내기 싫어서 음식물에 머리카락을 살짝 빠뜨린 뒤 인터넷에 올리겠다고 협박하는 청소년들이나 자신의 애미 애비벌 되는 사람한테 한국어도 영어도 아닌 파괴된 문장들을 내뱉으면서 그것도 못알아듣냐고 당당하게 타박하는 40대 접수처 직원이나 그런 소리를 듣고있어도 제몸 안 고쳐줄까봐 전전긍긍하며 굽신거리는, 심지어 그런 대접에 익숙한듯한 체념의 태도로 병원 복도를 유령처럼 오가는 노인네들이나 모두 매한가지이다. 자신이 누구이며 누구를 만나고 있고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고 어떤 존중과 대우를 요구하며 받아들일지 포기한 듯 한 모습인거다. 네가 덜 아파서 그런 소리가 입밖으로 나오는거다, 라고 추궁해도 말을 멈출 생각은 없다. 인간답게 살기,가 그렇게 어렵고 포기해야 할 욕망인가.
밤
자정이 막 넘은 시각, 상가건물앞에 거대한 박스와 쓰레기 더미가 차곡차곡 쌓여있다. 어두워 잘 보이지는 않았다만 더미들 사이로 어떤 형체가 비쳤다 사라진다. 흡사 귀신 같기도하고 어릴적 봤던 에일리언의 괴물들처럼 시커먼 그림자들이 박스 사이를 오간다. 용기를 내 좀 더 가까이 갔다. 왼쪽에는 해체된 박스가 오른쪽에는 아직 모양이 잡힌 것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그 사이를 오가는 작은 손을 들여다본다. 사람이었다. 그것도 아주 작은 몸체의 두 노인들. 그들은 남의 집 쓰레기 봉투를 훔쳐와 재빠르게 솎아내기 시작했다. 쓰레기를 파먹고 사는 벌레들처럼 손길이 정신없이 바쁘다. 박스를 주워 리어카에 담아 끌고 가다가 백주대낮에 택시에 치어 병원에 입원했다는 할매 친구 얼굴이 떠올랐다. 병실에 찾아온 살이 퉁퉁한 며느리가 놓고간 깡통음료수에서 쓴 맛이 났다고 했다. 자식 입에 밥 넣어 주려고 평생 쓰레기니 고철이니 하는 것들을 주워 먹고 살았지만, 그 입에 들어간게 밥이지 쓰레기는 아니었다. 헌데 그 밥이 결국 독이되었다 쓰레기가 되었다. 몸이 성한 노인들은 아직 그래도 거동할 수 있으니까 지네처럼 구루마처럼 밤길을 기어나가 밥값을 벌고 그러다 병얻은 노인들은 짐짝 취급 당하며 미라처럼 누워있다. 남겨진 버려진 것들이 죄다 쓰레기처럼 치부되는 세계. 어둠을 뚫고 쓰레기와 돈을 솎아내는 손들 몸들.
새벽
하나의 존재가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목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개의 부모는 자식의 탄생만을 반대로 자식은 부모의 죽음만을 보게된다. 대개가 있다면 예외는 늘 있다. 오롯하게 전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대게 감당하기 어렵다. 때문에 예외보다 대개의 경우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두 아들이 차례로 한강에 몸을 던졌다는 할매가 오늘도 대로변까지 나와 손주를 배웅한다. 잘 다녀오거라, 얘야. 네, 다녀오겠습니다. 나가면서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의 말을 한다. 시작은 했으나 끝을 담보할 수 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