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달이 지나는 동안 두 개의 계절이 다녀갔다. 누군가 내게 거기서 혼자 더 있었다면 위험했을거야, 라고 그러던데 여기 산다고 해서 안전한 느낌은 없다. 되려 평온이라는 감각의 부재가 사무치다. 전에도 그랬던 것 같지만, 이번에 들어와 새삼 크게 느낀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화가 나있다. 그러면서 극단의 감각을 원한다. 이를테면 행복이니 치유니 그런 말들을 동원해가며 일말의 희망을 드러낸다. 며칠 전 한 작가가 그런 말을 하던데, 동양적 세계관에서 '행복'이라는 개념은 없었다고 한다. 그는 되려 '평온'이라는 말을 꺼내며 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상태와 관계망에서 살아가는 것이 원하는 바다, 라고 덧붙혔다. 무엇무엇에 대한 강박, 열망이 곧 희망이라는 말로 둔갑하는 세계에서 모든 말들이 무기력하게 느껴진다. 만난지 얼마 안 된 사람이나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 혹은 실수로 내뱉은 말을 듣고 우울한 감정을 극복해라, 라고 조언을 하는 것은 섣부르고 건방지다. 남 눈치를 보지말고 살자와 내 자신의 내면에 충실하자는 엇비슷해 보여도 엄연히 다르다. 나를 튼튼히 하는 것이 남에게 헛소리나 잔소리 듣지 않기 위해서는 아니니 말이다. 자식의 진로에 대한 걱정과 본인이 믿는 종교에 대한 확신이 어떻게 동일한 선상에서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지 알길이 없다. 사람들은 남 걱정 많이 하며 사는 듯 보여도 결국 자신의 불안감의 원인을 본인의 내면이 아닌 타인과 주변으로부터 찾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으로밖에 뵈질 않는다. 밖을 나온다고 해서 세상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도망은 주어진 조건 밖을 향한 몸짓이 아니라 내 몸을 스스로 넘어설 때 가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