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끝이 간지러워 잠을 뒤척이다 결국 불을 켜고 일어나 앉았다 새벽 3시 반 모기의 출현. 거실 창문을 종일 열어둬서 그랬는지 어느새 집안으로 찾아든 모기들 이렇게 한밤중에 일어난 것은 오랜만이기도 하거니와 갑자기 여름밤 같이 느껴졌다 급히 물파스를 찾아 바르고 앉았더니 잠이 더 이상 오지 않는다 내친김에 비포 미드 나잇을 한 번 더 보기로했다 개봉한 지 얼마 안되어 시내의 근사한 극장에서 보긴했지만 왠지 이런 한밤중에 그 영화를 다시 보는 느낌이 어떨지 궁금했다 잠이 달아나버려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지만.
최근에 서울에서 이 영화를 본 친구말이 영화 내내 말이 너무 많아서 시끄러웠다고 핀잔을 하던데 뒷자석의 잠든 아이들의 심정을 알겠다라는 누군가의 댓글에 혼자 킥킥댔다 전에 할매말이 나이가 들면 모든 기운이 입으로 뻗쳐서 수다스러워 진다고 본인을 좀 이해하라는 농을 건넸던 것이 생각났다 하지만 이들은 94년도나 2006년도 그리고 현재 41살이 되어서도 말이 많은 건 매한가지이다 영화속 그들의 말을 빌자면 이 얼마만의 수다냐 라고 되려 자신들을 방어한다 말인즉슨 애들 뒤치닥거리 고지서 잡다한 일들을 처리하기위해 나누는 말들 이외에 대화다운 대화를 그것도 젊은 시절처럼 이국의 어느 거리를 어슬렁 거리면서 잡담아닌 잡담을 그리고 고백아닌 고백을 터트리는 것, 결국 여전히 우리는 살아있다 라고 선언하는 것 처럼 그들은 대화를 지속하고 있었다.
처음 극장에서 봤을 때에는 이 영화가 마침내 나왔다는 것, 그들이 세월이 지나 어떤 모습으로 살고있을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대화 내용을 주의깊게 듣지 않았다 어쩌면 짧은 리스닝 실력 때문이겠지만 두번째 보고있으니 한 마디 한 마디가 대략의 상황들이 어쩜 저러냐 싶을 정도로 변하지 않았고 나같고 너같을 수 있을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여기서 남자와 여자, 고리타분한 방식이지만 굳이 이분화해서 분석해보자면 대화법의 차이를 통해서 괜히 한밤중에 지나간 연인을 다시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젠장 나같은 사람들이 많았으리라 단언해본다. 문제를 직면했을 때 어떻게든 해결해보려고 시작된 여자의 말에 남자는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으니 잘 모르겠다라고 회피성의 답을 건네온다면 여자는 평소에 생각해둔 이야기들을 보태어 이야기를 지속시키려고 한다 그냥 좀 가만히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뚱한 태도를 보이면 여자는 그 상황에서 가장 극단적인 불행한 상황으로 이야기를 끌고가다 결국 자신의 인생이 한심스럽게 느껴지며 모든것을 되돌리고 싶다고 말한다 남자는 결국 참다못해 문제의 본질을 흐리지말라며 좀 이성적으로 굴라고 다그친다 그 이성적이라는 한 마디에 더욱 감정적으로 이바구는 치닫고 서로 욕설을 퍼붓다 나자빠진다 잠시 정전상태였다가 남자가 능글맞게 문제를 덮으려하면 그 모습에 환멸을 느낀 여자는 바르르떨며 꼴도보기 싫다고 폭언으로 맞선다 영화도 현실의 연인들도 대부분 이런식으로 싸우고 또 싸우고 결판을 낸다 싸움을 이어갈지-서로 곁에 계속 있어줄지-혹은 싸움을 종료시킬지-헤어지든지-말이다.
어제 읽은 문장중에 니체가 이런 말을 썼드만. "그렇다. 우리가 삶을 사랑하는 것은 삶에 익숙해져서가 아니라 사랑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사랑에는 언제나 약간의 망상이 들어 있다. 그러나 그 망상 속에도 언제나 약간의 이성이 들어 있다." 라고.
한 사람과 한 사람이 즉 하나의 세계와 또 다른 세계의 만남이라는 것은 엄청난 일임에는 틀림없지만 문이 열리고 빛이 쏟아들고 초대가 이루어진 순간 즉, 두 세계의 결합이 시작되는 순간 앞에서는 너무 밝아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컴컴한 그림자가 겹겹이 포개져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 그림자가 엷어지고 즉 장막이 거치기 시작하면 매순간 충돌을 준비하고 해체되는 조짐을 느낄 것이다 핵심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에 대해 약간의 망상이 남아있으면 전쟁은 계속되고 그들의 삶은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반대의 경우라면 그 세계는 휴전이 찾아올테고 평화롭거나-더 이상 그 지긋지긋한 싸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보며 상대를 기억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래서 시제는 중요하다 전에, 후에, 그리고 지금은 어떻게 다르고 또 같을까.
'한밤중'이라는 영어 표현을 찾아보면 'in the dead of night' 도 있더라.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고요한 상태 즉, 죽은 상태일 때 우리는 아침을 꿈꿀 수 도 혹은 그 자체로 머물 수 도 있을 것이다 한밤중에 갇힌 상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