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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 of nothing things, think of wind

Day_dreaming 2012. 11. 25. 21:04

하루키 잡문집에 수록된 '바람을 생각하자'라는 글에서 위의 문장이 등장한다. 트루먼 카포티의 <최후의 문을 닫아라>의 마지막 문장으로 고통스럽거나 괴로운 일이 생길 때 자동적으로 떠올리는 문장이라고 한다. 자신의 첫 번째 단편 제목과 연관성이 있을까,라는 물음이 떠오르면서 동시에 그래서 그렇구나,라는 무언의 동감을 했다. 막막하고 곤란하군,이라고 느끼는 순간 바람에 집중하면서 이 바람은 어디에서 왔을까, 온도는 어떠한가 등등의 생각으로 어딘가를 향해 여행을 떠난다. 하루키 본인은 삶에 있어서 진정 바람을 제대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은 짧은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나는 지금 내 방을 향해 온몸으로 돌진하려는 저 무서운 기세의 바람을 감당해낼 길이 없어 글자들을 두들기고 있다. 정오가 지난 이 시간까지 내 마음은 어디 하나 둘 곳 없이 쿵쾅거림의 연속이었다. 다섯시쯤이었던가. 잠든지 채 네 시간이 안 된 시점에서 불연듯 눈이 떠졌다. 아니 그 때부터 기분 나쁜 바람 소리가 방안으로 스며들기 시작했고 뒤이어 차례차례 어떤 물체들이 떨어지고 깨어지고 부서지는 소리, 거실 너머 도로로부터 굉음의 앰뷸런스 사이렌이 입이 찢어져라 소리치고 있었다. 이 모든것이 가장 절정으로 치닫았을 오전 7시 무렵까지도 하늘은 아주 새카매서 어떤 일이 벌어지든 몸을 숨기기에 적당한 때였다. 비교적 수리된지 얼마 안 된 이 집 조차 전에 살던 집 처럼 이 도시의 바람에는 혼이 팔려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그간 너무 양반이었지, 바람들이, 뭔가 성나기 시작한 것이 분명하군. 이라는 생각을 할 때 까지만 해도 나는 저 문장을 떠올렸다. 그래 아무것도 아닌것을 생각하자. 그런데 바람을?


자연에 압도된 경험을 몇 번 한 적있다. 그리고 자연의 힘이 얼마나 센지도 몸소 체험한 적이 있다. 도시와 다르게 자연으로 깊히 깊히 들어갈수록 진면목을 마주할 수 있는 기회는 훨씬 많아지는데 그곳에는 예측과 추측이라는 것이 별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급작스러운 우박과 불어난 물로 발이 묶여 하루밤을 꼼짝없이 낯선 마을에서 보내야 한다거나, 경사 70도 가까이 되는 장엄한 산등성이 앞에서는 제아무리 훈련된 선수라도 중간중간 서다가다 할 수 밖에 없다. 어제 본 중국 한시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산도, 워낙 험하다보니 열보를 걸으면서 아홉번은 뒤돌아보게 된다는 시도 전해져 온다. 물론 내레이터는 솜씨좋게 풍광이 워낙 아름다워 걸어온 길을 뒤돌아 볼 수 밖에 없다,라는 뜻에서 그런 말이 전해져오는 것이 아닐까라는 말을 덧붙혔다.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땅과 하늘에 적응하고 동화되어 그 나름의 방식대로 삶을 이어오고 있다. 그래서 몽골 사람들이 전통 악기 마두금이나 그들의 독특한 창법은 초원의 사람들답게 '바람소리'가 중요한 가락이라 음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일 년, 나는 날씨가 일상에 미치는 영향, 개중에서 바람과 비가 나를 몹시 괴롭게 한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고 체념했지만 여전히 적응이 안된다. 고요하고 적막한 가운데 저 멀리 피리가락처럼 가늘고 희마하게 전해져오는 소리가 아니라, 대지의 온 사물을 뒤흔드는 이곳의 바람은 듣고있는 것 조차 몸이 아파져온다. 애인과 친구들에게 숱한 토로를 늘어놓아도 그들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내가 더없이 그들보다 예민하게 군다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바지만 과연 내가 누군가와 함께 저 소리를 듣고 있으면 감당해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모든것은 혼자일 때 가장 또렷하게 다가오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니까. 그것은 변함없는 진실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