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간밤

Day_dreaming 2015. 1. 14. 13:14

봄밤

김수영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赫赫)한 업적(業績)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行路)와 비슷한 회전(廻轉)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人生)이여 

재앙(災殃)과 불행(不幸)과 격투(激鬪)와 청춘(靑春)과 천만인(千萬人)의 생활(生活)과 
그러한 모든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節制)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靈感)이여



오랜만이랄 것 까지 없는데 모처럼 엄마랑 제대로 술을 마셨다. 한국을 떠나기 전, 어쩌면 영영 돌아오지 않을 사람마냥 친구들에게 부모에게 무엇보다 내 자신에게 많은 말과 그만큼의 술들로 넘쳐나는 밤을 보낸적이 있었다. 다시 돌아올 줄 알았다면, 그렇게까지 했을까 싶다. 부끄러움은 늘 다음날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에야 찾아든다.

내가 없는 동안 엄마는 내가 사라진 사실을 제외하면 전혀 달라진 것 없는 삶을 살고 누군가를 미워하고 질투에 불타오르고 자식새끼들을 손에서 놓치않으려고 이를 악물었다 고급식당에서 진상을 부리는 사람들 하룻밤 욕정을 쏟아대고 떠난 사람들의 뒤치닥거리를 하면서 돈과 맞바꾸었다 그리고 속으로 몇 번이고 되내였다고 한다 나만 오기만 하면 어디 두고보자, 막내 군대가 가면 나는 당장 이 집을 나갈 것이다, 라고.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고 막내는 군대로 떠났다 그 사이 사내마내 이를 가는 것도 쉬지않고 있었다 결국 모든 것들이 다 벌어지고 나니 엄마에게 남은 건 피로감이다 밥상머리 술상머리 할 것 없이 급하게 들이키고 소리를 내며 음식을 먹는 사람들을 아주 미워하는 엄마앞에서 숟가락과 술잔을 들고 앉아있는 것도 여간 신경쓰는 일이 아니다 엄마는 소리에 예민했고 그 자신이 내는 소리도 때론 끔직하게 생각했다 나는 엄마 딸인게 분명하다

이렇게 끝날줄 몰랐어, 라고 보이후드에서 아퀘트가 말했을 때 정확히 이해할 수 가 없었다. 간밤에야 알았다. 그건 목적이 상실된 순간에 찾아드는 당혹감이다. 누군가 그런말을 했었지. 누군가를 미워하고만 살기에 사랑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글쎄 그것보다 뭐든 충분히 할 수 없는 시간, 그 시간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이 떠밀려갔다가 혼자 남겨졌을 때 드는 배신감을 마주할, 온전히 내 것인 것들이 실상 별로 없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도 하는 것, 알면서도 모른척 하는 것의 공통점은 이것이다. 나와 너 사이에서 끊임없이 발견하고자 하는 너안의 나, 어쩌면 내 안의 온전한 내것을 찾기위한 전투를 위한 최소한의 눈치다. 부모가 되봐야 자식이 부모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는 온전히 나일뿐 이라는 사실을 올곧하게 받아들이는 법이 수월할 것이다. 사랑과 애정, 최소한의 예의가 성립되면 그 관계는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너다, 라는 따위의 말을 쉽게 입밖으로 내서도 마음으로 품어서도 안된다. 결국 피로감만 남을 거라는 거, 때문에 서두르면 안된다는 것.



연초부터 좋은 단편소설을 두 편 읽게되어 벅차다 동시에 그 두 이야기들은 차마 슬프다,라고 말할 수 없는 단단함을 가지고 있다. 그 소설들을 읽고 난 후 해지는 하늘이 너르게 펼쳐진 공원을 걷고 있자니 다시 한 번 벅찼다 오랜만에 울었다 너무 아름다운 것을 보면 어쩔줄 모를 때 조용히 찾아오는 그 눈물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