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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어느새 그렇게

Day_dreaming 2013. 3. 31. 19:29

세시가 좀 넘어서 잠든 것 같다. 언젠가부터 랩톱을 켜둔 상태로 불까지 환하게 켜두고도 기절한 것 처럼 잠에 빠져들 때가 있다. 어쩌면 예기치못한 즐거운 순간들을 만날 때, 한 마디로 시간 가는줄 모르고 있다가 그조차 놔버릴 때도 있다는 것이다. 애들이 꾸벅꾸벅 졸면서도 엄마가 주는 밥을 조금씩 삼키며 품에 잠드는 것처럼 가장 안온한 상태에 놓이게되면 모든 것들로부터 스스로를 굳이 인식하지 않아도 될 때, 그 때가 가장 자유로운 것인가.


나도 그러면 좋겠다.


전화가 울려 눈을 떴을 때 아직 몸은 자고 있었는데 서울에서 엄마로부터 걸려온 것이라 그냥 받았다. 벌써 전화기 너머로는 내 안위를 살피며 아직 자고있으면 나중에 하라고 해, 라는 가족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얘기인즉슨 어쩌다 스마트폰과 랩톱의 중간쯤 되는 기계를 얻게되었는데 그것으로 스카이프가 가능한지 알고싶어하는 내용이었다. 엄마는 다시 자라고 끊자 말해두고 나도 순순히 전화를 끊었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아직 8시. 어제 좀 늦게 잤으니 더 자고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서도 분명 궁금해하고 날 기다리고 있을 가족들을 생각하니 그냥 지금 전화를 거는게 낫겠다 싶어서 랩톱을 켰다. 아니나 다를까 로그인 하기 무섭게 전화가 걸려왔다.

이제나 저제나 했다는 할매는 눈이 잘 안보이는 것은 둘째치고 슬슬 귀도 잘 안들리는 것 같아 내말을 연거푸 되묻곤 했는데 나는 괜히 기계 핑계를 대고 괜찮으니까 천천히 말하라고 다독였다. 이제 봄이니 염색도 좀 하고 분위기도 바꿔보라 말하자 내년까지 딱 1년 만 더 염색을 하고 그만하겠다고 선언하듯 대꾸한다. 날씨가 어떠니, 라고 묻길래 창밖을 보니 호랑이인지 살쾡이인지 모를 누군가가 장가나 시집을 가는지 마른 햇살 사이로 눈이 쏟아져내린다. 세상에 어쩜 그런다니 거기는. 그냥 웃었다. 그리고 우연히 손목시계를 보고 그제서야 깨닫는다. 아, 썸머타임이 시작되었구나. 이제 한 시간을 앞당겨 사는구나.


친구가 어제까지 나와 한 시간대 떨어진 지역으로 여행을 왔다고 일러주었는데, 그곳을 검색해보니 이제는 동일한 시간대이다. 엄연히 말하면 아프리카 근처, 사막과 바닷가가 오묘하게 겹쳐져있는 그래도 먼 곳인데 같은 시간대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가깝게 느껴진다. 다그치지 말고 서두르지 말고 그렇다고 넋놓고 있지만은 말고 하나보면 또 그렇게 새로운 계절의 시간이 온다. 오늘 하루가 또 새롭게 시작된 것 처럼 충분하게 이 햇살과 공기를 흠뻑 빨아들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