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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Day_dreaming 2013. 8. 30. 01:32

사흘전에 새로운 룸메이트가 왔다 두 달 전에 이 집에서 같이 살기로 구두계약을 하고 자신의 고향으로 갔다가 돌아온 것 중간중간 방세와 공과금에 대해 인터넷으로 의논했지만 막상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거의 없는 것. 20일 가량 혼자 이 큰 집에 있으면서 어느새 두려움도 서서히 잊혀져가고 나름 안정된 생활을 하다가 누군가와 다시 함께 산다는 것은 여간 신경쓰이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해서 그녀가 오기 한 주 전부터 조금씩 청소를 하고 이런저런 물건들을 재배치 했지만 실제로 살 사람과 맞춰가봐야 끝맺을 수 있는 것. 결국 그녀가 도착한 날 밤 나보다 키가 작은 사실을 파악하고 내 물건들을 위쪽으로 옮기고 아래쪽 칸을 비워주었다 그 날 저녁 말없이 내 밥통을 쓰는 것을 보고 약간 놀라긴 했지만 아직 살림살이가 하나도 없는 애한테 쓰지 말라고 할 수 없고 기껏 솥 한 번 쓴다고 해서 닳아없어지는 것 아니니 그냥 뒀다 무엇보다 같은 아시아애라 그런지 오자마자 쌀을 사와서 밥을 해먹는 것을 보고 웃고 말았다 그치만 하나 다른점은 하얀 쌀밥에 동네 KFC에서 사온 넓적다리 하나를 두고 식사를 하는 것 보고 아, 다르구나 싶었다 그 아이도 나를 쳐다보더니 너네 나라에서도 KFC에서 밥 안파냐고 묻더라 아 그렇진 않아 근데 예전에 태국 KFC에 갔더니 팟타이 팔아서 좀 놀랐다 하하하 우리는 깔깔대다가 내가 한 마디 덧붙였다 한국 햄버거가게 가면 김치버거를 판다 하하하 정말이냐 하하하.


다음날 아침 밥을 하러 나갔더니 이미 간단하게 아침을 준비해서 거실에 앉아있는 모습을 봤다 내가 식사 준비를 거의 다 마칠 때 쯤까지 거실에서 밥을 먹고 있는 소리가나서 잠시 망설였다 원래대로 밥을 내방으로 들고가 먹을 것인가 그래도 첫 날인데 같이 앉아서 먹을 것인가 뭔가 혼자 쪼로록 들어가버리면 매몰차 보일 듯 해서 그냥 앞에 앉아서 각자의 밥을 먹었다 가만보니 전 룸메이트도 그랬지만(국적은 다르나 둘 다 같은 나라에서 자란관계로) 차가운 얼음에 차를 우려서 마시는 것보니 더운 나라에서 왔구나, 싶더라 아직 고향에서 돌아온지 얼마 안되서인지 몰라도 화사하고 화려한 프린트의 옷을 입고 앉아서 해를 쬐는 모습이 익숙해보였다.


사흘째 된 오늘 아침, 오늘 계획이 있냐고 묻길래 없다고 했더니 본인은 그냥 답답해서 밖에 나가볼까 한다고 말끝을 흐렸다 방에 다시 돌아와 읽던 책을 읽을까 하다가 마음을 바꿔 같이 따라나서기로 했다 각자 일을 보고 중간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막상 기대했던 전시는 사람들도 많고 도무지 집중이 안되어 채 한시간도 안되어 밖으로 나왔다 문득 벽에 걸린 그림을 보고있자니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차라리 밖으로 나가 그 아이와 이야기나 하면서 걷는게 낫겠다 싶었다 참 오랜만에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예상시간보다 일찍 나와 근처를 어슬렁거렸는데 신기하게도 슈퍼근처에서 딱 마주쳤다 우연히 그 아이가 알고있는 카페를 내가 알고있었고 갑자기 신이 난 우리는 전차를 타고 시내로 나갔다 오랜만에 밖을 나오니 사람들은 그득그득 무엇보다 여름이 아직 발광하고 있는 모습에 낯설면서도 신이났다 왜 여기에 왔냐 이 학교를 선택했냐 가족은 어떻게되냐 시시콜콜 뻔한 질문들을 주고받으며 답했지만 오래전부터 익숙한 느낌의 사람을 만난 것 같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여기오기 전에 다른 유럽 도시에서 잠깐 생활을 했다가 너무 괴로워서 결국 차선책으로 찾은 데가 여기라며 말을 잇는데 그러고보니 어딘가 의젓하고 강단있는 모습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아이나 나나 이방인으로 살아가면서 스스로 체득해나가는 것들이 하나씩 얼굴에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 더 이상 큰 실망도 지나친 차이도 없다라는 것 고향과 타향을 구분지으며 상실감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은 그만두고 담담하게 살아가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 것을 아닐까 그래서인지 중간중간 말이 없어도 별 불편함없이 길을 걷고 창밖을 내다보다가 집까지 함께 걸어올 수 있었던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