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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으라는 소리

Day_dreaming 2013. 5. 30. 00:39

재료를 사러 시내에 나가는 길에 트램을 탔더니 들어가자마자 뒷통수 어딘가에서 남자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내 주변엔 대부분 노인 승객들이라 하얀 머리들만 보였는데 시간이 지나도 멈출줄 모르는 그 남자의 목소리에 하얀 파뿌리색 머리들이 힐끗힐끗 뒤를 보기 시작했다 나는 고개는 돌리기 귀찮고 그저 뭔 소리를 하나 가만히 들어보니 휴대폰에 음악을 틀어놓고 따라 부르는 상황이었다 가사는 끊임없이 같은 소절을 반복하고 있었는데 내용인 즉슨 나는 범죄자 나는 범죄자 원래부터 나는 범죄자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 누구도 나를 사랑할 필요없어 나는 상관없어 나는 범죄자 나는 범죄자, 이거였다 빠른 템포와 뒤틀리는 기계음 사이로 자신의 목소리를 덧입혀가면서 때로 박자를 놓쳐 음에 헐떡이면서 끝까지 멈추지 않은 노래소리 나는 범죄자 누구든 나를 사랑할 필요없어 그리고 이어지는 욕지거리들.


두어 번 비슷한 광경을 대중교통 안에서 목격했지만 그 어느누구도 신경쓰지 않는다 아니 침묵으로 다들 참아낸다 이 나라도 몇 년 전 부터 청(소)년들이 무섭게 나이든 사람들을 폭행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일련의 사건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지하철에서 괜히 십대들에게 말 한 마디 잘못 했다가 본전 찾을 생각은 둘째치고 해꼬지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것이다 모두가 똑같이 고립된 자세를 유지하면서 각자가 원하는 목적지로 이동하기 위해 잠시 한 장소에 머무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곳이 공공장소이다 십 년 전 쯤 도쿄에 처음 갔을 때 지하철 안의 풍경을 보고 적잖이 놀랐었다 후에 알게된 사실은 옆 사람이 핸드폰 액정을 들여다보는 것을 참을 수 없어서-한마디로 프라이버시니 뭐니-볼록한 액정 스티커를 처음 만든 곳이 바로 일본이다 책 커버야 이미 올드, 올드패션이고.


그런점에서 상관없다고 나 혼자라도 괜찮다고 울부짓는 그 청년은 어쩌면 돈키호테일지도 모른다 죽겠다 외로워 살 수 없다를 온천하에 떠들어대는 확성기 뻔뻔한 사람이 사실 제일 속 편하게 사는 거다 이 세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