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음의 감사
책을 읽을 때 언젠가부터 밑줄을 긋거나 필사를 해서 옮겨둔다 문장 자체에 매료되기도 하고 현시점에서 내게 새로운 방향등같기도 해서 저금을 하듯 노트 폴더에 쟁여둔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에게 요즘 듣는 음악이 뭐냐고 물었더니 음악을 듣지 않는다고 했다 사실 좀 놀랐다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음악을 듣는편인데다 한동안 내 리스트는 모두 그로부터 제공받은 것이었으니 말이다 새로운 것은 찾아듣지 않게되고 옛것들 중에도 한 두 뮤지션 정도만 반복해서 듣는다고 했다 나 역시 음악을 잘 안듣게 된지 오래인데다가 공연장에 찾아가 직접 들었던 적이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조차 안난다 그래도 전에는 좋은 음악을 발견하면 문장을 노트하는 심정으로 그 뮤지션의 예전 곡들과 그가 참여한 곡들 혹은 비슷한 계열들을 뒤져서 나만의 그 뮤지션 리스트를 만들어두곤 했다 요새는 내가 작업을 하는 사람인지 서류를 쓰는 사람인지 이도저도 아닌 그저 피곤한 사람인지 자문한다 이럴 때에는 좋은 것을 보고 충전을 해야 하는데 오늘 한 순간, 만나고 왔다
전시장을 들어서자마자 기묘하게 이곳도 어울리지 않는 공기들이 내려앉았는데 그것은 무엇보다 여기 없는 존재들이거나 매일 사라지는 것들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집요하고 끈질기며 대범하고 날카로운 시선을 부스러질 듯한 재료들에 던져두었다 이미 전작들을 거의 다 본 입장에서도 오늘의 전시장 공기만큼은 낯설지만 숨죽이게 만드는, 함부러 나 그거 안다, 라고 말할 수 없는 그 작업 자체의 존재들이 둥둥 떠있었다. 멍하고 흐릿한 내 두눈을 내버려뒀다 전시장을 빠져나올때까지 내가 쉽게 이름붙일 수 없음에 감사했다 진짜를 볼 때 두려움과 두근거림이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