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나이
1년 전 이맘때 쯤이면 자주 눈꺼풀이 떨리고 오한이 밀려왔다. 일조량이 부족한 도시에서의 삶의 필수품은 다름아닌 바나나와 비타민D와 같은 것들이다. 그 도시에 살려면 적어도 꼭 필요한 몇 가지 것들을 체득하기 까지 시간이 걸렸다. 자주 졸음이 밀려왔고, 두툼한 양말과 웃옷을 입고 방안에서 시간을 보냈다. 다시 돌아오면 의식적으로 혹은 계획적으로 준비할 것들이 그리 많을거라 생각치 않았는데 한 해 두 해 지나니 몸에서 신호가 먼저 온다. 적당히 운동하고 적당히 쉬고 그리고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휴식해야만 일상을 꾸릴 수 있다. 최근 한 달 사이 때때로 찾아오는 현상-눈 앞이 뿌옇게 초점이 맞지 않는 느낌-에 은근히 신경 쓰였다. 동시에 복통이 시작되면서 지병의 재발에 대해 의심했다. 어딘가로부터 오는 통증은 일순간 참기 어려운 고통이지만 살면서 몇차례 겪어본 것이므로 그닥 두렵지 않았다. 되려 시각이 흐려지니 공포감이 밀려왔다. 이때까지 1.0 이하로 떨어져본 적 없는 시력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틀동안 일을 보러 간김에 병원 두곳을 들렀다. 다행히 시력이 나빠진 것은 아니지만 안구 건조증이라는 진단이 내려졌고 인공 눈물을 받아왔다.(지금도 약간 눈이 뻑뻑하다) 의사는 가능하면 컴퓨터도 책도 보지 말고 자연으로 나가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뜻으로 밖에 들리지 않아서 묵묵히 설명만 듣다가 나왔다. 이 어찌 내가 하는 일 때문에 몸의 기능이 서서히 저하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단 것인가. 장염이니 복통이니 하는 것들과는 다른 느낌이 분명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이상이 생기는 것과 동시에 무엇을 한다한들 더 좋아질 수 있는 기대를 쉽게 가질 수 도 없다. 한마디로 서서히 퇴화되고 있는 것이다. 할매가 자주 그런 말을 한다. 앞도 안보이고 맛을 느낄 수 도 없고 잘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밤마다 아픈 몸뚱아리를 부여잡고 신음하지만 결국 이 몸뚱아리로부터 벗어나고 싶다고. 인간이 비로소 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때가 있기는 할까. 극단적인 상황에서 생존의 위협을 느낄 때, 과연 나는 생의 의지를 담은 행동을 할 것인가. 자연스럽다,라는 말만큼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없는 때이다. 여전히 순응하지 못하는 내 몸, 생각들. 어쩌면 여전히 살아있어서 그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