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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 일일

Day_dreaming 2012. 3. 2. 01:05
오랜만이다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그 아래 빨래들을 촘촘히 걸어두고 고요한 책상에 앉아본 것.
사실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또 준비했다 오늘을 그래서 어쩌면 모든것이 자연스럽게 하나씩 진행된 것인도 모른다. 부은눈을 뜨고 창문을 열어젖히고 컴퓨터를 켰다 몇 통의 이메일을 확인하고 음악을 튼다 한 끼 먹을 쌀을 붓다가 한 컵을 더넣어 점심까지 먹자싶어 씻기시작했다 한동안 2인분의 밥을 짓는것이 익숙해져서인지 뭔지 모르지만 물도 정확히 맞췄다 속을 채우고 시계를 들여다본다 아마 상해에서 비행기를 갈아탔으리라 커피를 내려 마시고 담배를 한 대 피운다 시트와 이불보 베게 책상을 덮어둔 천이란 천은 죄다 바닥에 늘어놓고 빨래방에 갈 물품은 오른쪽 벼르던 물건정리, 즉 이제는 더 이상 옆에둘 필요없는 물건들은 왼쪽에 옮겨둔다 일주일전에도 방청소를 했지만 늘 먼지는 뽀얗게 쌓인다 빨래방에 들러 1시이후에 오라는 말과 함께 노란 티켓을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메트리스를 바닥으로 내리고 프레임 안까지 꼼꼼하게 먼지를 쓸어낸다 그가 주고간 커다란 트렁크안에 한동안 쓰지않을 물건들을 담고 단단히 채운다 돗자리 카페트 걷어 본격적으로 쓸고닦는다 지금쯤 그는 인천에 도착하였겠지 엉켜있는 옷가지들을 모조리 꺼내 두터운것과 얇은 것 어느새 여러장 생긴 스카프들은 한 쪽에 생리대와 화장품 박스들은 안쪽에 다시 챙겨두었다 아직 빨래방에 갈 시간은 남았고 부엌 바닥을 쓸기 시작하자 일이 금새 커졌다 때마침 들어온 룸메이트가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괜찮다고했다 얘네 나나 고집이 센 편이라 기어코 팔을 걷어붙이더니 복도를 닦기 시작한다 너는 기분이 괜찮니, 몇 번이고 물었다. 나는 괜찮지 않다고 했다. 9년차 연애경력 소유자라 그런지 묻지않았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가며 나를 다독인다. 급기야 오늘밤 술 한잔 마시러 가자며 권하기까지 한다. 공동구역의 청소가 끝날무렵 이 아이는 이것저것 물건을 꺼내보이며 나에게도 쓰라고 권한다. 그러면서 주어를 끝까지 그의 이름과 내 이름을 함께 부른다. 그러고보니 이 이아와 살기 시작할 때부터 그도 함께있었다. 무의식적으로 복수형으로 말을 끝까지 이어간다.

빨래방에 들러 빳빳해진 침구커버들을 들고 돌아오는 길, 동네는 여느때와 같이 축구하는 아이들 산책하는 노인들 쉴 새없이 지저귀는 새들이 있었다 날이 한결 따뜻해졌다 얇은 점퍼만을 걸치고 나갔다 왔는데도 전혀 추운 기색을 못 느꼈다 하나씩 변해가고 있다.

커버들을 다시 제자리에 씌우고 마지막 한 가지만을 남겨둔채 담배를 피웠다. 이제 나만 씻으면 끝이다. 샤워와 빨래를 동시에 마치고 커피를 다시 내린다. 방에 들어와 이 자리에 앉기까지 여섯시간이 걸렸다. 벌써 8개월을 이 도시에서 살고있다는게 실감이 안나지만 오늘은 익숙함과 새로운 기분이 동시에 찾아들었다. 어쩌면 원래의 자리로 또 아니면 새로운 자리의 시작에서, 나는 다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