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의 성질
뉴욕서 살며 공부하는 친구가 유럽여행을 마치고 서울들어가기 전 잠시, 비행기 바꿔타기 위해 이곳에 들렀다. 일년만에 만나는 이 친구와 예닐곱 시간동안 뭘할까 하다 줄서서 봐야하는 뮤지엄을 패스하고 학교에서 열리는 전시로 대체, 십오육 유로는 줘야하는 식당대신 집으로 데려와 밥 한끼를 먹였다. 오랜만에 만나는 것이지만 익숙함이 있고, 그치만 각자의 시공간에서 살면서 체득한 행동양식이 서로 얼마나 다른지 여실히 드러났고 우리는 서로 그 지점을 매우 흥미롭게 생각했다. 건축가 이름을 딴 학교의 전체적 맥락과 공간에서 주로 사용된 회색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두어시간 지나고 나서 친구는 이런 코멘트를 했다. 애들 대부분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색들이 채도가 낮고 주로 혼자있고, 눌린채 온몸으로 외로움을 표출하는 방식이 꼭 회색같애. 우리학교 전관은 벽이 흰색인데 여기는 프로젝션 룸 조차 회색인 것을 보면 날씨처럼, 여기 사람들의 기운이 그 벽에 스며들어간 것 처럼 보여. 연이어 프린트물이 많은 것을 보고도 한 마디 했다. 이것이 어떤 '차이'를 만들어주는 것 같은데? 나는 질감인가, 잠시 생각해봤는데 그 조차 톤이었다. 색의 성질.
빠르게 쏟아낸 나의 브리핑에도 불구하고 친구는 아주 작은것에서 이 도시의 기운, 이 학교의 분위기, 그리고 나의 삶까지 대략 짐작하는 듯 했다. 서로 인사하지 않는 사람들, 눈 마주치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모습과 기운들이 자연스럽게 작품에서 드러나는 것. 모든 화면에 만든 창작자들이 카메라앞에 서서 슬로우 모션으로 머리카락을 휘날리든 봉제인형들마냥 흐느적거리든간에 다들 혼자였다. 생각해보니 이 점을 전에 한 번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친구말을 듣고보니 정말 그렇네. 뉴욕은 너무 빨라서 모든 것을 쫓아갈 수 도 없지만 내일이면 새로운 작품들이 갤러리로 쏟아져들어와서 그만큼 '후레쉬'하지 않으면 주목을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너무 멀리, 아득하게 느껴졌다. 모래위에 구명보트를 두고 그 안에서 열심히 노를 젓는 것을 보더니, 어, 이거 어디서 봤는데, 근데 이제 이런것 좀 지겹다. 어쩌면 성급한 판단처럼 느껴질 수 도 있겠지만, 그 말 자체가 시사하는 바가 있다. 그런데 여기 사는 나같은 애들은 여전히 알 수 없는 목적지를 향해 노젓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노젓는 일을 멈추는 것이 더 나은지 기냥 모래 밖으로 뛰어나와 그 안에 구덩이를 파고 드러눕는 것이 빠른지, 건설적으로 물을 찾으러 가는 것이 맞는것인지. 하. 뭔가 재밌는 이야기가 떠오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