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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함에 대한 환상

Day_dreaming 2013. 1. 29. 21:34

사나흘 남짓 바쁘다면 바빴고 쓸데 없는 말을 많이 했던 것 같고 무엇보다 지쳤다 그닥 무게있는 일이 아니었음에도 하루짜리 전시를 세우고 자리를 지키고 다시 철수하는 과정에서 예상치못한 일들이 늘 있기 마련이다 오늘 누군가 잘 지내세요, 라고 묻는 메시지에 너는, 이라고 되물었다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그 사람 말에 기대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은것이겠지,라고 대답을 짤라먹었다 아마 컨디션이 괜찮았으면 재미없는 유학생활의 단편이라도 들려주었을텐데 그러기엔 말을 듣고 대답하기 귀찮은 내 상태에만 집중했으리렸다 말을 말지 원.


질문과 대답,이라는 일방적이고 일반적인 방식으로 작업 하나를 방에 가둬두고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막상 누군가 들어와 주의깊게 들여다보고 있으면 얼굴이 화끈거려 이내 벽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본능적인 반응일 뿐 그 사람들은 날 발견하지도 내 질문과 대답을 힐끗 보고 그냥 사라졌다 사람들은 과연 전시장에 왜 오는 것일까, 매번 드는 생각이지만 참 궁금하다 누군가 책을 읽는 이유가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그것에 대한 호기심을 재확인하기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어디에선가 읽었는데 사실 다들 자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찾으러 책 속으로 그림속으로 타인의 입속으로 가는 것이다 훈계도 감동도 그런 것 없다 차라리 푹신한 소파나 침대를 세팅해두고 맘편히 쉬시오, 라는 메시지를 붙혀놓는 것이 훨씬 현명할 거라는 생각마져 든다 이럴바에 여관을 차리는게 나을지도.


아담 자가예프스키의 시집을 읽으면서 좀 무서웠다 헤르타 뮐러나 쉼보르스카가 뿜어내는 동유럽 출신 작가들의 날선 문장과 가늠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들을 마주하는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그 집요함이 참으로 무섭다 끊임없이 묻고 또 묻는 나는 누구일까, 이곳은 어디일까, 나는 왜 여기에 있을까. 알기위함이 아니라 증명하고 또 증명해내는 그래서 스스로 도망갈 틈을 주지않는 저들의 칼날같은 질문들. 이런 질문들로부터 도망치려 애써도 결국 나 역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멍하니 남의 말을 듣고 있을 때에는 네가 내 인생에 뭘 아냐란 식의 욕지기를 해봤자 그 순간 모면의 탈출구를 또 찾으려 발버둥칠 뿐 나는 다시 또 질문한다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나를 마주하자 라는 것 만큼 거짓은 없다 거짓말을 열심히 생각해봐야 솔직이니 진심이니 하는 것 발뒷꿈치 언저리에 다다를 수 나 있을랑가 어차피 누군가 내 귀에 대고 어떻게 이렇게 살아라고 백날 말한들 나는 절대 듣지 않을 위인이니 신경 끄기로 했다 사실 솔직함은 큰 무기일지 몰라도 그것이 온전한 해답일 수 없다 해답 따위에 있기나 하나.


온전하게 충분하게 좌절하고 절망해야 하는 것이지 그리고나서 입을 떼야지 책들을 보고있다고 해서 저게 다 내것이 될 수 있다는 착각을 떨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