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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님 귀는 신문고

Day_dreaming 2014. 5. 14. 22:19

누가 말했는지는 잊었지만, 중년부부들은 한 공간에 있으면서 서로를 점점 가구대하듯 한다고 들었다. 늘 손 닿는 곳에 있지만 대화를 나누지 않는 것, 고통이나 분노조차 토해내지 않는 것, 왜냐하면 가구는 벽처럼 대답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사실, 사람들은 정작 그저 가구처럼 들어주는 사람이 눈앞에 있기를 원할 때도 있다. 조언도 격려도 됐고, 잘 견디는 귀만 가지고 있으면 된다.


한 달 반짓 밖에 안남은 전시를 앞두고 공간을 정하는 문제로 골치다. 예상은 했지만 무섭게들 달려들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쟁취하려 한다. 보다못한 누군가가 내게 그냥 나쁜 사람이 한 번 되어봐, 라든가 나 조차 모르는 내 결정에 대해 괜찮으니 맘편히 털어나봐, 라든가 하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힘이 풀린다. 사실 내 이야기를 듣고 싶은게 아니라 자신들이 빨리 결정하고 싶기 때문에 내 대답을 재촉하는 거지 뭐.


어깨 한 쪽을 늘어뜨린채 만나고 싶진 않았지만 지나가다 할매 선생이 보여 잠깐 들어가 인사를 했다. 얼굴을 보자마자 잘못 들어온 것을 대번에 알아차렸으나 바로 나갈 수 없었다. 그 때 부터 울분이 섞인 목소리로 본인의 분노와 고통을 호소하시더니 급기야 손으로 책상을 쾅쾅 내리쳤다. 이야기인 즉슨, 내가 왜 남편의 뒤치닥거리를 해줘야 하나, 이다.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안정시키는 차원에서 자리를 뜨지 않고 잠자코 앉아있다가 선생 대신 일처리를 하나 했다. 점점 곱아가는 손가락으로 아이폰 액정을 꾹꾹눌러가며 글자를 쓰려는데 잘 안되니 이 양반 모습이 숨 넘어 가기 직전처럼 보였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 온몸에 힘이 풀리면서 귓가가 윙윙거린다. 요즘엔 혼자 있어서 누구한테 해댈 수 없어서 성질이 죽은건지 모르겠으나 나도 예전엔 어지간히 못되게 굴었다. 집어 던지는 건 안해도 몸을 부르르 떨며 눈물을 떨구면 친구들이 다가와 해결해주곤 했다. 인간에게 가구는 소중하지만 가구같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그저 그 사람은 아주 침착하게 자신의 고통을 누르며 분노에 떠는 상대를 아이처럼 바라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