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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Day_dreaming 2013. 6. 18. 16:45

지난 학기 서너 주에 걸쳐 이론 수업을 들었다 논문을 쓰기 전 일종의 몸풀기 혹은 기본 개념 익히기 정도의 의도로 개설된 것인데 예상보다 깨나 흥미로웠다 특히 첫 시간에 나누었던 질문, 아름다움이 무엇이냐?에 대한 각기 다른 단상들. 그 날 들었던 대답 중 가장 흥미로웠던 순간은 바로 이거였다. "어떤 작품을 대할 때, 딱히 뭐라 할 말이 없을 때 아름답다고 말한다." 순식간에 폭소가 터져나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웃기 시작해서 다들 키득거렸다 어쩌면 저렇게 솔직할 수 가 한동안 저 말이 오래 맴돌았다 몇 주 후 선생 한 분과 이야기를 하다가 저 에피소드를 들려줬더니 그 분 역시도 비슷한 반응을 했다 그러면서 정말 흥미롭다며 그 문장을 흉내냈다 마치 미국 여자 애마냥 지나치고 과장된 말투로. 이번 학기 전시 때에도 이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나누게 되었다 올해 초 한 번 만난 후로 두번 다시 만나지 않으리-내가 준비가 되기 전 까지-다짐했지만 실상은 창피해서 도망다닌 선생 한 분이 있다 이 양반은 가장 젊고 말 그대로 제일 잘나가고 게다 독설가다 이 도시를 나라의 양면성 사람들의 이중성을 무지하게 싫어하고 1년 중 공항에서 있는 시간이 절반 이상인 코스모폴리탄이올시다 암튼간에 좀처럼 아름답다, 라는 말을 잘 안쓰는 사람이 내 작업을 보다가 한참 후 아름답다, 라고 말해서 내가 대뜸 뭔 뜻으로 하는 말이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이 사람이 껄껄 웃더니 무슨 뜻이냐고 묻길래 그 에피소드를 이야기해주었다 이어서 그가 해준 이야기 특정인물을-선생 중 한 사람-거론하면서 그 여자가 흥미롭다,고 말하는 소리가 너무 듣기 싫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할 말이 없으니까 오, 웰, 인터레스팅! 입꼬리까지 씰룩거리며 흉내냈다 그리고 나에게 매순간 의심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맞어 내가 좀 의심쟁이지.


왕가위 감독이 토크쇼에 출연했다길래 찾아봤더니 거기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오갔다 질문은, 당신의 영화들은 시각적인 아름다움이 매우 크다 어떻게 그러한 아름다운 장면을 만들 수 있나 어떤 노력을 하나 였다 이에 대답은 나는 아름다운 것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나는 제대로 만들기위해 노력한다, 고.

그러면서 덧붙혔다 고다르가 말했던 단 한 번의 꿈, 매 영화가 새롭다 여기고 만드는 것처럼 하고싶고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나는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매순간 또 새로운 것이 시작될 테니까.


앞 뒤 상황판단을 제대로 하고 묶었다 풀었다를 반복하고 해서 매끄럽게 이어가는 순간, 작업, 삶이 아니라 제대로 뒤틀리고 제대로 응시하는 것 정직한 것 나는 그렇게 하고싶다. 환영은 창조된 세계속에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의도된 최면이다 흔들리는 눈동자를 붙잡게 하는 힘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순간에 이름을 붙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