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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침묵

Day_dreaming 2013. 6. 1. 18:09

뒤늦게 더 헌트, 라는 영화를 봤다 시종일관 답답함은 둘째치고 같이 울 수 도 화낼 수 도 없는 화면속 세상밖에서 그저 우두커니 모든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점에서 영화라는 매체는 장치는 관객들로 하여금 꼼짝없이 숨죽이게 만들다가 영화의 시간이 끝나고 나면 일종의 책임감이든 즐거움이든 간에 온전히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숙제를 안겨준다 모든 예술이 그러하겠지만 말이다 내용은 둘째치고 영화속에 풍경이 익숙해서 놀랐다 나 역시 북구 아래쪽에 살고있다보니 실내의 조명이며 가구들, 11월의 지독한 추위 앙상하지만 시퍼렇게 날서있는 나무들 모두 입을 다문채 묵묵히 있는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어쩌면 그들도 나와같은 침묵의 목격자들. 주인공 남자의 눈동자 흔들리지 않는 눈동자 점점 깊어가는 겨울처럼 그 사람의 눈동자속에도 말로 다 할 수 없는 깊은 그림자가 점점 들어차는 순간 오전 나절에 읽었던 이병주의 단편소설 몇 대목이 떠올랐다 등장인물 중 오랜시간 감옥살이를 마치고 일상에 복귀하지만 그 역시 일제와 6.25 그리고 새로운 국가체계의 소용돌이 속에서 오래 입을 다문채 아무와도 대화를 하지않고 살아가고 있었다 단 간간히 내비치는 짧고 간결한 말투가 화자인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일종의 재판관 같았다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타인을 들여다보고 다시 각자 자신들을 들여보고 그러면서 내가 타인이 세상이 이루어진 모습을 보며 살아간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도 믿어주지 않는 모서리로 밀려날 때 세상과 단절하는 침묵, 그것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늘 우리주변에서 서성이는 침묵들 그 침묵들의 귀는 어떤 청각능력보다 뛰어나 그들은 입을 열지 못하는 자들에게 철썩하고 달라붙는다 입술은 메말라가고 목구멍으로 타들어가는 수 만개의 비명이 냄새도 풍기지 못한채 사라진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침묵은 멀쩡히 살아나 돌아다니는데 우리는, 사람들은 늘 꼼짝없이 갇힌다 그 순간에는 진실이니 거짓이니 따위가 이미 사라진지 오래고 침묵, 그 자체만 남는다 가장 무서운 형벌이자 언어이다.



며칠전 서울에 있는 친구와 전화하다 또 다른 친구를 바꿔주었다 오랜만에 듣는 음성이었지만 그대로였다 그 역시 나에게 아 어쩌면 이렇게 똑같냐, 라고 묻길래 사람은 쉬이 변하지 않잖냐 라고 대꾸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서로를 참 좋아하고 아끼는데 전화통화도 만나는 것도 꺼려진다고 말했다 나는 그의 말을 대번에 알아차렸다 친구들 가운데에서도 쑥스러움을 느끼는 자가 있는데 나에게 그가 그런 사람이다 그것은 생각과 감정의 결이 달라서 발생하는 어긋남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서로의 그 모습 그대로 내가 좋아하는 그 모습 그대로를 지키고 지켜주고 싶은 거다 전화 말미에 잠시 말을 멈추더니 이렇게 말했다 우리 딱 10년 있다가 만나자 그 때 만나서 다시 얘기하자, 라고.

전화통을 끊고 갑자기 정말 오랜 시간이 흘러버린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8000KM 떨어진 공간, 7시간 차이가 아니라 각자 온전한 하나의 객체로서 별로서 행성으로서 검은밤속을 헤매이다 우연히 잠깐 접선한 느낌이었다 그리곤 한참이 지나 오늘 아침 그 친구와 전화를 떠올리면서 이른 나이에 죽은 혹은 오랜시간 죽은것처럼 살고있는 몇몇의 예술가들의 초상을 떠올렸다 그와 내가 공통으로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한 어떤이는 비틀거린채 사는 것 같아도 무섭게 쓰다가 시간속으로 사라져버린 이가 있다 그는 자신이 쓴 소설처럼 다음날 아침 일어나보니 죽어있었거나 혹은 죽은자 옆에서 어쩔줄을 몰라 난감해하는 그 사람처럼 어디에선가 살고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얼마전에 문학잡지를 읽다보니 그 작가의 최근 근황에 대해 동년배 작가가 쓴 이야기를 읽었다 그는 정말 자신의 소설처럼, 그 상흔의 시대를 온몸으로 겪다가 입을 닫아버렸다고 게다가 몸의 반이 마비가 되어 누군가의 도움없이는 걸을 수 조차 없는 지경인데 그래도 이제는 많이 회복되어 간신히 부축을 하면 걸을 수는 있다고 그의 몸속의 딱 절반의 감각이 사라지고 남은 절반은 아직 붙어있는 목숨과 사투하며 살고 있을 거라고 대신 그는 거의 말을 하지 못한다고 스스로 입을 가둔건지 감각들이 가둬버린건지 모르겠지만 너무 일찍 늙어버린 청년작가는 이제는 몸이 굳은채 살아 어딘가에는 존재한다고, 라며 썼다.

나는 이 문장들이 갑자기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와 친구의 말을 다시 떠올렸다. 그래 십 년 후, 다시 만나자. 그런데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 어떤 모습일까, 어떤 모습이어야하는가. 어떤 말들로 입을 떼야 하는가 그 때 우리의 감각들이 끊어진 시간들이 다시 이어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