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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2.서귀포

Day_dreaming 2010. 12. 2. 16:02


역마살을 묻는 친구의 말에 도화살이라고 말한 후 말이 헛 나왔다는 것을 알고 나서 한참을 웃었다. 어디냐고 묻는 말에 서귀포라고 대답했다가 도대체 우리는 언제 볼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이동중이다.

긴 여행을 마친 후에 누구나 겪는 현실적응능력이 최대치로 떨어진 건지, 아니면 자꾸 어딘가로 나를 내몰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서귀포다.


익숙한 곳으로의 여행은 한결 마음을 가볍게 해주지만,

쉼보르스카의 말 처럼 똑같은 두 번은 없다. 첫 번째의 아련한 기억을 가지고 그것이 두 번째에 다시 재현되기를 바랄 뿐이다.


표선에 도착한 첫 날 밤, 어둠이 너무 일찍 내려 앉아서 밤 바다를 제대로 볼 수 가 없었다. 4월의 따뜻한 밤공기처럼, 12월인데도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공기를 가르며 잠시 서있었을 때 까지만 해도 내가 그리워하던 그곳에 다시 왔구나라는 생각만 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그 익숙하고 늘 마음 한 구석을 설레게 했던 표선표 바닷가는 그대로 였지만 내가 변해서인가? 내가 그 때의 나와 달라져서 인가? 같은 장소에서 조금씩 다르게 느끼기 시작했다.


서귀포에 처음 왔던 날 도 오늘 처럼 비가 내리고 있었다. 머리보다 높은 가방을 메고 도착했을 때 너무 추웠던 것 말고는 같은 게 별로 없다. 게스트하우스의 사장 내외 분은 자리를 비우셨고, 누군가 나를 익숙하게 반기고 알아줄 줄 알았던 마음 한 구석 기대는 실제로 재현되지 않았다. 숲섬 가까이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오는 길에 확실히 알았다. 이곳도 변했지만, 나는 변치 않는 마음을 가지고 왔고, 하지만 내 마음도 다시 변화하고 있는 중이다.


낯선 장소에서 온몸으로 외부적 영향을 받고 내부적 갈등을 일으켰던 지금 내가 어찌 쉬이 평정심을 찾을 수 있겠는가? 라고 친구가 되묻는다. 듣고보니 맞다. 어쩌면 잘 알 고 있으면서 때때로 타인에게 공감과 동정을 기대한다. 또 어쩌면 정말 그 사실을 모르고 살기도 한다. 무언가를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던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한 가지를 끝내면 다음, 또 그 다음이 보이고 눈 앞에 펼쳐졌고 의심없이 뛰고 또 뛰다가 지금은 한 발 자국을 디뎌내기도 겁이 난다. 아늑한 터널 중간을 걷고 있는 기분이 종종 든다. 그치만 저 멀리 출구가 있다는 사실에 막연한 기대를 걸고 또 한 걸음씩 가기도 한다. 진공 아닌 진공상태에 갇혀 허공에 손을 가르는 심정이 하루에도 열두번이다.


12월, 누군가가 말하길 어떤 때 보다 사람들에게 관대한 시기라고.

그런가? 나는 스스로에게 어떻게 하면 관대할 수 있나, 오만인가.

한 겨울의 시작점에서 열대병 걸린 느낌이다.

이 놈이 생각보다 지독한데, 겨울이 끝나면 괜찮아 지려나?

괜찮다, 괜찮아, 라고 다독이면 정말 겨울이 끝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