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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dreaming

Day_dreaming 2011. 11. 10. 04:03

너의 기억이 사라진 시간만큼 나는 죽어있었다


금방이라도 당신이 저 문으로 들어올 것 같아요 나의 눈은 항상 당신을 향해 열려있죠 눈썹 동공 눈꺼풀 당신을 만나기 전 나는 단 한 번도 이것들을 쓴 적이 없었습니다 당신은 나에게 초록을 알려주었죠 대지위로 솟아오른 풀들의 숨 그것들 사이로 우리는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습니다 계절이 바뀌고 초록이 붉은옷으로 갈아입을 때 나는 또 새로운 빛깔들을 알게되었지요 우리는 그렇게 열 번의 계절을 수 만가지의 색들을 함께 보고 또 알아갔습니다 나는 점점 당신의 얼굴이 흐릿해져갑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눈을 헹궈내고 또 헹궈냅니다 서릿발이 내려칠 때 마다 당신의 살결들이 나에게 달려드는 것 같아 흘러내리는 눈물을 꾹 참고 그 자리에 서있습니다 나는 반항하지 않습니다 나는 도망치지 않습니다 한줌의 재로 사라진 당신의 조각들 오 눈발은 더 이상 나에게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벚꽃의 살결을 떠올릴 수 없습니다 당신과 나 사이를 갈라놓은 훼방꾼의 등장 갈기갈기 찢겨진 비밀의 기억


나는 오늘도 당신을 기다리는 문 앞에 서 있습니다 내 귀속은 당신이 사라진 그 날의 바람 소리로 요동칩니다 코는 당신의 몸뚱이가 잿더미로 변한 가을의 냄새로 꽉 차있습니다 입술은 검게 물들어 쓴소리조차 낼 수 없습니다 나는 이미 당신보다 당신의 어미보다 나이를 많이 먹었습니다 아비의 얼굴을 모르는 자식을 바라보며 당신의 얼굴을 더듬습니다 나는 많은 빛깔들을 보았고 또 그만큼 잊었습니다 이 지상의 모든 색체들이 다 사라져 형용할 수 있는 단어들이 쓸모없다해도 당신의 빛깔만은 또렷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신과 내가 이름붙인 그 것, 그 때의 그 것, 보입니까, 서로의 숨,의 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