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0.26. 관악산
뭣 모르고 올랐던 한라산 등반 때 처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산을 오를 때에는 앞을 보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저 발 밑을 바라보며 돌 뿌리가 있지 않은지, 물이 고여 있지 않은지,
내가 내 발을 잘 간수하면서 제대로 디디고 있는게 맞는 것인지.
한참을 걷다 보면 뭣 모르는 사람이라도 내 앞에 가는 사람 등짝을 열심히 쳐다본다.
저 사람이 가고 있는 길이 맞는 것일까? 라는 의심이 들면서도
어느 순간 거의 반 기계적으로 그의 호흡과 스텝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걷고 또 걷고 숨을 고르고 그렇게 가게 된다.
정작 정상에 거의 다가갈 쯤엔
내가 왜 한심하게 여기 서있나 자각하게 된다.
더 오르기엔 죽을 것 같이 다리가 후덜거리고
다시 온 길을 내려가자니 그건 말도 안 되는 생각임을 금방 안다.
오늘은 엄마와 산에 올랐는데
엄마의 그 붉은 등짝이 크게 보였다가 작게 보였다가
정신을 쏙 빼놓았다.
그저 일개 청춘드라마로 보기엔
터질듯한 성장담이 무섭게 그려지고 있는 성균관 스캔들의 대사를 빌려오자면
내가 갈 길 앞을 먼저 간 사람, 그 사람의 등짝을 열심히 보면서
따라도 해보고 등 너머 세상도 궁금해 해보는
그래서 나도 언젠가 누군가의 등짝이 될 수 도 있으니까
열심히 살아야 된다고 했잖던가.
산을 오를 때 앞을 보지 않고 땅을 보면서
얼만큼 내가 가고 있는지 잘 알 지 못한다.
정상에 오르고 나서 해발 몇 미터, 4Km당 한 시간 사십 분 걸리는
내 속도를 알게 되지만
고개 숙이고 안위에 전전긍긍 할 때는
모른단 말이다.
그래도 오늘은 앞에 가는 등짝을 좀 믿을 수 있어서
풍경도 감상했다.
가을은 단풍이지, 암, 그렇고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