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1167

미야자와 겐지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에도 여름 더위에도 지지 않는 건강한 몸을 가지고 욕심은 없고 절대로 화내지 않고 언제나 조용히 웃고 있는 하루에 현미 네 홉과 된장과 야채 조금을 먹고 여러 가지 일에 자신을 계산에 넣지 않고 잘 보고 듣고 이해하고 그리고 잊지 않고 들판의 소나무 숲 그늘의 조그마한 이엉 지붕 오두막에 살며 동쪽에 병든 아이가 있으면 가서 간호를 해 주고 서쪽에 지친 어머니가 있으면 가서 볏단을 져 주고 남쪽에 죽어가는 사람이 있으면 가서 두려워하지 말라 달래고 북쪽에 싸움이나 소송이 있으면 시시할 뿐이니 그만두라고 말리고 가물 때에는 눈물을 흘리고 찬 여름에는 허둥지둥 걸으며 모두에게 얼간이라 불리고 칭찬받지 못하고 근심거리도 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나는 되고 싶네

TEXT 2023.07.05

소설 의 마지막 장면을 읽다가, 문득 이런 질문이 들었다. 스토너는 죽음의 세계로 걸어 들어가는 중인가, 혹은 비로소 생이라는 옷을 벗어내는 중인가. 그 어느때보다 주변의 사위가 고요하게 자신의 감각이 분명하다고 느끼지만, 실제로 그 주변의 사람들은 그가 이미 의식을 놓은채 일종의 섬망 상태에 놓였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도 그랬다. 올 초, 죽어가는 사람 곁에 있을 때 그가 더는 이곳에 우리와 함께 있지 않다 라고 생각했다. 알 수가 없다. 더는 물어볼 수 없는 것.

TEXT 2020.04.27

조바심

며칠전에 누군가 내게 조바심 내지 말고, 잘 보내주세요 라는 문자를 보냈었는데 이제야 그 말의 뜻을 헤아리게 된다. 누구나 겪을 일들, 하지만 언제나 미루고 부정하고 도망치고 싶은 상황에서 우리는 각자 어떤 선택을 해야한다. 연락을 받은지 일주일이 아직 안되었지만 매일매일을 아니 매순간을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병상에 누운 늙은 아비와 곁에있는 사람들이 생각난다. 그렇게 나는 지난 한 주동안 무엇을 하였나. 조바심도 갑자기 쏟아지던 눈물도 무엇보다 원망을 허공에 대고 많이 했었다. 그럼에도 무심히 시간은 흘러가고, 누군가의 문장처럼 마음과 달리 하늘은 화창했다.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는가, 아니면 지워내고 있는가. 결승점 앞에 서서 아직은 좀 시간을 달라고 가기엔 이르지 않냐고 생때를 쓰는 꼴이다. 머리가 ..

TEXT 2019.12.19

scrap) 소용 없는 말

소용 없는 말 사람들은 자기에게 소용없었던 말을 남에게 해준다. 사람들은 그 누구의 어떤 말도 마음에 닿지 않을 많은 일을 울면서 겪어낸다. 지혜란 대부분 마음 편할 때 소용되는 말이다. 남의 말은 답이 잘 안 맞는 참고서일 뿐이다. -김용택, 마음이 소란스러워서 일을 또 미룬다. 제일 쉬운 도망은 책한테 가는 것. 두어장 읽다가 너무 먼 느낌이 들었는데 서서히 고요해지는 것을 느꼈다. 지나치게 분석하고 해석하는 버릇, 쉽게 못 고친다. 작업할 때에는 그래도 꽤나 직관적인 편인데, 진입하기 전까지 제자리에서 오래 맴돈다. 작업외에 다른 일이 끼어들면 그때부터 머리가 다른 방식으로 돌아간다. 눈도, 입 밖으로 나오는 말들도, 세계가 다르게 보인다. 이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큰일이다. 눈 맑은 상태를 유..

TEXT 2019.12.17

여름

아주 오랫동안 닫아두었다. 글 보다 말을 많이 하게 된 이후부터인지, 아마도 나 자신보다 밖을 향한 시간이 더 길어져서인지. 일기에 대해 읽고 있는데, 천천히 다시 쓰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단어, 문장, 결국 어딘가로 나아가게 될 말들. 여름이 끝나갈 때 마다 늘 이제사 무언가를 시작하게 될 것 같다는 다짐을 한다. 두서없는 말들이 쏟아져도 한동안 다시 애를 써야한다. 계절이 끝나갈 때 비로소 그 자욱이 선명이 드러난다.

TEXT 2019.08.26

2017.12.23-25

아몬드 공간, 장소, 경계 아시아의 고아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On Body and Soul) 놀라웠다. 밀로라드 파비치의 문장같았다. 꼭 한 번 경험해보고 싶다. 패터슨 (Paterson) 아름답고 아주 고독했다. 조용한 열정 (A Quiet Passion) 좋아하는 시인의 전기영화이긴 하지만 그러다보니 일단 팔장부터 끼고 본게 사실이다. 제발 망치지 마라, 디킨슨의 삶도 그의 시(詩)도. 하지만 신시아 닉슨이 연기한 디킨슨도 그녀를 둘러싼 가족들도 우아학고 아름답게 위태롭게 잘 그렸다. 죽음이 두려운가? 라는 질문이 몇 번 등장했다.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 삶을 중단시킨 마지막 순간까지 그녀는 아무것도 포기하거나 버리지 않았다. 덩케르크 전쟁영화라 별로 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고, 시작부터 예상..

TEXT 2017.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