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기억과 해석

Day_dreaming 2014. 7. 21. 18:23

작년 여름부터 라디오를 많이 듣게되었다. 처음에는 관심분야의 정보습득을 위해 찾아듣다가 지금은 거의 하루종일 틀어놓고 지내고 있다. 혼자 지내는 사람들은 대게 하루에 몇 마디 이상의 말을 하지 않고 사는 경우가 흔한데 라디오를 틀어놓고 나서부터는 하루종일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때가 있다. 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목소리와 말투,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단어까지 파악하게 되었고 때문에 내 귀에 거슬리다 싶으면 괜히 싫어지는 기분마져 들었다. 어제밤엔 열대아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런저런 라디오를 틀었다 껐다를 반복하던 도중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라디오 방송이 녹음되었던 때가 정확히 20년 전, 1994년 7월 14일이었다. DJ는 기억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사람들은 기억하기위해 기록을 하지만 실은 해석에 의해 기억은 좌우된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려준 DJ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고 나는 2014년 7월 한여름 이국의 도시에서 주파수를 맞추어 듣고 있었다. 별 것 아닌 것 같으면서도 20년은 혹은 그 때의 나를 떠올려본다는 것은 쉽지만은 않은 일임에는 틀림없다.


쿤데라의 소설에서 개는 인간과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인지한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여기에서 저기로 즉, 과거에서 현재 그리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직선운동이 아니라 순환과 반복의 형태로 인지한다는 것이다. 나는 동물들을 살갑게 느끼거나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 이유는 이런 것이 아닐까한다. 내가 아닌 모든 존재는 나와는 다른 성분과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낯설고 어려울 수 밖에 없는데 추측과 의중이라는 것 자체도 관계를 통해 서로 훈련되어져 '이해'니, '인정'이니 하는 것들이 가능해진다. 이러한 점에서 내게는 개나 고양이와 관계를 해본적이 없다. 아이들일수록 선입견과 두려움없이 동물을 잘 대하고 만진다고 하지만 기억을 떠올려볼 때 나는 두려워했었다. 주저함과 두려움이 인식의 첫 번째 표현이라는 것이 부정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이제는 인정한다. 어쩌면 매순간 스스럼없이 다가가고 판단하고 규정짓는 것은 나와 맞지 않는다는 것. 이것또한 내가 동물이든 사람이든 첫 번에 만나는 모든 대상들에 대해 취하는 태도의 해석을 기억으로부터 불러낸 것인지 문득 의문이 든다.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다 문득 복잡하다, 라는 동사가 대번에 떠올랐다. 원하든 원치않든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선택에 의해 구현되는 것 만은 아니다. 과거의 오해가 현재의 이해에 얼만큼 큰 힘을 행사할까. 버리기위해 떠나고 버릴 것은 두고 왔다고 믿는 것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다만 한 가지 명료한 사실은 이러하다.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알고있다. 그 자신이 나의 사랑과 신뢰를 받고 있음을. 확인하기 위한 만남은 불필요한 관계이다. 해서 나는 우연이 좋다.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필연적 관계의 사람들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