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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알고있다

Day_dreaming 2016. 8. 16. 11:32

첫 눈에 반한건지는 모르겠으나, 각자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둘째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더욱 짐작이 안되니 그저 눈앞에 보이는 얼굴을 믿고 그 매혹에 이끌려 만난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모는 덜커덕 이모부와 결혼했다. 그때부터 20년 가까이, 외도와 도박대신 이름도 어려운 어떤 종교에 빠져 이모부는 돈 한 푼 벌어다둔 적이 없다. 자식들이 머리가 다 커 아버지보다 등치가 커져 당신 그렇게 살지 말라고 윽박을 질러대도 이모부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입에 풀칠은 해야하기에 마트점원, 급식 보조원 등을 전전하며 이모는 살았다. 얼마전에 요양보호사 자격증까지 취득하면서 이모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고 병든 자들을 돌보면서 그래도 자기 손으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고 그게 밥벌이까지 된다는 안도감에 서울 외각 어느 병원에서 숙식을 하며 지낸다. 3개의 병실 9명의 환자를 돌보면서 24시간을 꼬박 그 사람들의 손과 발이 되어 살아가는 거다. 그중 최고령자인 100세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었다. 특별히 어떤 질병이 있기 보다 나이 그대로 노환이라 대체로 그 노인 시중 들기는 어렵지 않았다고 했다. 악을 쓰고 밥 안 준다고 떼를 쓰는 치매 환자들과 굳이 비교해 본다면 양반이라는 거다. 아침 나절 곱게 머리도 빗고 다른 노인들과 노래도 부르고 그림도 그리는 활동을 하는 동안 이모는 먼 발치서 그저 할머니가 제대로 몸을 보존하고 있는지 지켜보며 본인도 잠시 쉴 수 있었다. 어느날 갑자기 식사량이 줄기 시작하는것을 보면서 이모는 막연히 이 노인양반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했다. 밥의 양이 줄고, 밥에서 죽으로, 죽에서 미음으로 바뀌어가면서 노인은 침대에서 일어나는 일이 드물어졌다. 이모는 노인양반에게 "할머니, 언제 갈거야?" 라고 물었고, 노인은 "다음주 토요일에 갈 거야."라고 대답했다. 이모는 가족들에게 연락을 했다. 임종이 가까워 오고 있다는 말 대신, 오랜만에 할머니가 당신들을 찾으니 들르러 오라는 정도의 귀뜸을 했다. 그렇게 아들 손자 며느리가 한바탕 다녀간 후, 노인양반은 토요일 오후 3시에 눈을 감았다. 신의 기운을 좇아 20년을 산 건 이모부인데 느닷없이 이모가 그 기운을 받은건지는 모르겠으나 그녀는 분명이 알고 있었다. 잠든 사람들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손의 기운을 느끼고, 헛소리라 넘길 수 있는 병자들의 말을 기억하고 믿어줬다. 노인양반은 스스로 언제 길을 떠날지 분명히 알고 있었고, 믿을만한 사람이라곤 이모 밖에 없으니 말해준 것이다. 죽음과 슬픔이 익숙해질 수 없지만, 누군가 자신에게 어떤 말을 할 때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정도의 감은 생긴거다. 알 수 없는 죽음이후의 세계 대신, 죽음 앞에서 조용히 떠나는 자를 기다려준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