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났더니 다시 봄이다 모처럼 친구가 이 도시에 왔었는데 머무는 내내 이 나라의 전형적인 심술궃은 비와 바람이 한시도 멈추지 않았다 어느새 나는 머플러와 여러겹 옷을 겹쳐입는 것이 익숙해서인지 그냥저냥 다녔지만 얇은 옷들만 꽉꽉채워 짐을 싸온 얘는 깨나 고생을 하고 돌아갔다 나와 별자리 혈액형도 같지만 어쩜 그리 다를까 싶을 정도로 나흘을 잘도 깔깔대며 있다갔다 실은 처음 하루이틀은 오랜만에 웃음소리를 끊이지 않고 듣고 있으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가 후에는 약간 지쳤달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 아이를 통해 다시 내모습을 발견한 거다 옆에서 한참을 말하고 있는것을 묵묵히 듣고있다가 겉으로 큰 반응이 없자 빠르게 다른 주제로 이야기가 잘도 넘어갔지만 나는 혼자 속으로 이야기를 들으며 자연스럽게 반응을 한답시고 옆에 있었던 거다 듣는것을 전보다 잘하게 되었지만 반응하는 것은 여전히 느리고 서툴다 새로운 도시에 발을 들어선 사람에게 가이드로서 나는 빵점인게지 제아무리 숨겨놓은 보물을 꺼내 펼쳐놓는다한들 오로지 내 경험의 기억으로만 비춰지면 타인에게는 그저 그런 것들 중 하나로 스치기 마련이다 혼자 지내는 것이 익숙해졌구나 라는 사실을 누군가 다녀가고 난 후에 깨닫는다 마치 어제밤 반은 잠든채 또 반은 깨어있는 상태로 틀어놓은 프랑스 영화를 보다가 스치듯 지나간 대사처럼-내 곁을 떠나지 말아요 나는 당신이 없으면 살 수 없어요 당신이 프라하에 가야 한다지만 나는 파리를 떠날 수 없어요 그냥 여기서 우리가 같이 있는 이곳을 프라하라고 하면 안될까요-사람은 쉽사리 타인을 위해 자신을 양보하지 않는다 그것이 사랑조차도 아니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힐 때에는 더욱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