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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어제의 일들

Day_dreaming 2015. 12. 18. 01:12

모든 화무십일홍인 거라. 후회하고 원망하고 애끓이면 뭐해. 좋은 날도 더러운 날도 지나가. 어차피 뚜껑 닫고 들어가면 똑같아. 그게 얼마나 다행이냐

어머니는 밥을 먹고 있는 내 등을 쓰다듬었다. 밥이 한 가득한 입 속으로 어머니의 말을 따라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이 복잡했던 날들을 생각했다. 차마 다 기억할 수 도, 돌이킬 수 도 없는 기억들은 명백히 지나가버렸고 기세등등한 위력을 잃은 지 오래다. 정말 살아있어 다행이다. 다행이라 말할 수 있어 다행이다.

/ 정소현, 어제의 일들


올 초 이 책을 만났을 때 나는 그저 다행이다, 라는 문장으로 이 소설이 끝난다는 것에 안도했다 어쩌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시간이 찾아오더라도 누군가 곁에서 이 말을 해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싶었다. 자정을 넘긴 시간 일터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을 빠져나오는 길 위에서 오랜만에 이 문장을 다시 들었다. 나는 안도할 수 없었다. 후회와 원망, 애끓음의 시간 속에서 아,직 더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기 때문일까. 저 멀리 끝없이 이어지는 가로등은 누구를 위한 불빛일까. 그저 멈추지 않고 그대로 어딘가로 가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그렇게 가다보면 '어제의 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