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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

Day_dreaming 2017. 2. 15. 11:55

오랜만에 내 살림을 다시 살게되니, 해야되지만 하기 싫은 일들이 하나씩 생겨난다.
내게 그것은 누군가에게 부탁을 해야하는 일이고, 부탁을 해야하는 사람과 연락을 취하는 일.

입주 전 부터 싱크대와 수도꼭지를 교체해주기로 주인이 약속을 했지만, 감감 무소식이라 결국 연락을 했다.
뭐 다행히 잡음없이 그 날 밤에 주인은 새로운 수도꼭지를 들고 찾아왔고, 수리공을 부를 예정이며, 자신의 부인이 내게 말을 잘못 전달한 것인데, 핵심은 수도꼭지에 전혀 이상이 없으며 이전에 살던 사람이 수압조절을 위해 테이프를 붙여놓은 것이라는 부연설명이었다.
별로 길게 대꾸하고 싶지 않아서 듣는 시늉을 하고 돌려보냈다. 그저 원칙과 약속대로 일을 하면 될텐데, 왜 그 사이에서 누군가의 탓을 구분하려하고 변명을 하는지 알 수 없다. 애완동물을 키우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이사를 왔건만, 이틀도 안 지나 주인집에서 개를 키우고 있고, 하루종일 묶여있다가 밤이 되면 풀어놓는 바람에 내 베란다 창앞에서 서성이다가 짖어대는 것을 보았지만 그냥 넘겼다.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는 타당한 것이 타인에게 화살이 돌아가면 용납할 수 없다는 심리는 늘 봐왔던 것이니까.
그런점에서 옛날 집 주인은 퍽 쿨했다. 물론 그가 같은 건물에 살 지 않았고, 국경 너머 다른 도시에 살고 있기에 가끔 연락이 잘 안되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일체 쓸데 없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원칙과 약속을 신봉하는 아빠 조차도 융통성을 발휘해서 좋은게 좋은거니 넘어가자고 하는 것 보면, 분명 이것은 어떤 세대 혹은 이 나라 국민성의 일부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아무튼, 오전 나절 다시 확인차 주인에게 수리공 연락처를 물었고, 잠시 망설였지만 곧장 연락했다. 그도 정확히 몇 시에 올 지에 대해서 대답을 피하는 대신, 12시 지날 즈음 이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내가 너무 시간에 예민한 건지 모르겠으나, 타인이 내 일상의 흐름에 진입할 때에는 어느정도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필요한 것을, 어쩔 수 없는 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