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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Jeszcze

Day_dreaming 2010. 9. 29. 09:03
여기저기 납땜 자국이 무성한 낡은 기차에 올라탄 채
'이름들'이 이 나라 방방곡곡을 누비고 있다.
어디로 갈지
언제 내릴지
묻지 마라, 대답하지 않으리라.
왜냐하면 나도 답을 모르니까.

나탄이란 이름은 주먹으로 벽을 치고,
아이작이란 이름은 광란의 노래를 부르며,
사라란 이름은 갈증으로 죽을 지경인
아론이란 이름을 위해 물 달라고 고함을 지른다.(6)

다비드란 이름이여, 열차가 달릴 때 뛰어내리지 마라.
넌 패배를 상징하는 이름이다.
아무에게도 주어지지 않은 이름, 집 없는 이름,
이 나라에서 짊어지고 다니기엔 너무도 버거운 이름이기에.

아들에게 슬라브의 이름을 명명할지어라.
여기서는 머리카락 개수를 낱낱이 세니까.(7)
여기서는 이름과 눈꺼풀 모양으로
선과 악을 구분하니까.

열차가 달릴 때 뛰어내리지 마라. 아들의 이름은 레흐일 테니.(8)
열차가 달릴 때 뛰어내리지 마라. 아직은 때가 아니니.
밤이 웃음소리처럼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철길을 두드리는 바퀴의 부산한 움직임과 더불어.

사람들의 무리는 연기가 되어
저주받은 영토의 상공을 구름처럼 떠돌고 있다.
커다란 구름에서 겨우 한 줌의 빗줄기가(9) 쏟아져 내린다. 그리고 한 방울의 눈물.
한 줌의 빗줄기와 한 방울의 눈물, 그리고 이어지는 목마른 가뭄의 나날.
철길은 검은 숲으로 향하고 있다.

칙칙폭폭. 바퀴가 철길을 두드린다. 빈터 하나 없이 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숲에서.
칙칙폭폭, 간절한 부름을 담은 기차는 숲을 가로질러 어디론가 향한다.
칙칙폭폭, 한밤중에 눈을 뜬 내 귀에 생생하게 들린다.
칙칙폭폭, 정적 속에 흩어지는 침묵이 덜그럭대는 소리.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9 "아주 큰 구름에서 나온 가느다란 빗줄기 Z duzej chmury maly deszcz"라는 
폴란드 속담이 있다. 그 의미는 뭔가 큰일이 일어날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별것 아니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