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말
수천 번의 낮
나는 그 이름들을 잊기 위해 매순간
가슴에 쌓인 먼지들을 털어냅니다
수천 번의 밤
수천 번의 낮
나는 그 이름들을 지우기 위해 지금까지
홀로 그것들을 죽였습니다, 끈질기게
세상에는 털어낼 수 없는 죽일 수 없는
수천 가지의 이름들이 있었습니다, 여기
밤과 낮 기억과 상실
그리고 당신과 나까지
가위로 싹뚝 잘려져 나가지 않은
무언의 이름들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버려진 이름들을 가지고
어느날 가만히 들여다봤습니다
사라진 줄 알았던 기억들을 가지고
어느 날 새 이름을 붙여봤습니다
오늘 여기에서 처음으로 그 이름들을 불러봅니다
어쩌면 내가 당신들께 이미 수천 번도 넘게 해온
고백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이 자리에
그 이름들을 함께 불러보려 오신 여러분께
인사합니다
닫는 말
풍성하고 즐거운 식탁에 둘러앉아 있어도
나는 늘 세상에서 가장 못난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있었다
어느 날은 감추지 못하여 미움과 가난한 마음들을
서슴치 않고 드러내 곪아터진 부스러기들을
그대들에게 던져 버렸다
들키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었다
내가 아닌척 타인의 삶에 숨어들어갔다
비겁한 마음을 숨기려
그대들에 마음에 돌을 던졌다
되돌아온 돌덩이가 가슴을 짓눌렀고
그 돌들이 나에게 말했다
더는 가난해하지도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
그대로 사라지지만 않으면 된다
오늘 이 소박하지만 따뜻한 식탁에 둘러앉아
그대들에게 하나의 씨앗을 건네본다
지금 이 시간을
꽃 같은 그대들의 얼굴을
다시 마주할 수 있어서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자주 만납시다 놉시다 사랑합시다
[깍, WRITING ON THE EDGE]를 빌미로 모인
우리의 아름다운 밤을 위해.
2011.01.28. 안유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