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인터넷 서점을 들락거리다가 오스터의 리스트들을 다시 쭉 봤다.
작년 여름 누군가의 생일선물로 주었던 굶기의 예술 The art of hunger, 당시 내가 거의 마지막으로 샀던 기억이 난다.(그 이후 온갖 사이트를 뒤졌음에도 불구하고 절판되었다.) 오늘 아침 소피 꺌과 함께 쓴 책을 둘러보다가 "폴 오스터의 뉴욕통신"이라는 괴상한 제목의 책을 발견했다. 신간인 것 같지 않고(네로가 뉴욕에서 친필사인을 받아준 Travels in the Scriptorium이 가장 최신작인듯) 내용을 쭉 훑어보니 굶기의 예술의 인덱스와 일치했다. 그렇다, 굶기의 예술이 재번역되어 나온것이다! 반가운 마음도 있었지만, 내심 제목이 마음에 안든다. 뉴욕통신이라니!
암튼 몇 차례 읽고 곱씹으면서 오스터의 문장에 반한 것도 있지만 오스터가 가득 애정을 담고 누군가에게 자신이 사랑하고 좋아하는 작가를 소개하는 그 '헌사'의 글귀들에 마음이 흔들렸다. 이 책을 시작으로 수잔 손탁을 읽으면서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나의 지인들, 혹은 존경하는 자에 대해 강렬하고도 군더더기 없이, 애정을 담은 표현을 할 수 있을까? 라고 말이다. 굶기의 에술의 번역자인 최승자씨는 뉴욕 길거리에서 우연히 오스터의 이 책을 발견하고선 누군가에게 소개싶어주고 싶다라는 마음이 일었다고 했다. 그렇기에 번역을 자청하면서 책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함께 만든 사람같다.
수잔 손택은 문학 번역에 관해 이렇게 썼다.
작가는 무엇보다도 우선 독자입니다. 저는 독서에서 제 자신의 작품을 가늠할 기준을 얻습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저는 딱할 정도로 모자랍니다. 글을 쓰기도 전에 독서를 하면서 저는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더 많은 공동체, 문학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읽는다는 것, 기준을 갖는 것은 과거와 다른 것과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문학을 읽고 문학에 대한 기준을 갖는 것은 번역 문학과 관계를 맺는 것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투쟁하는 독자란 무엇일까?
배움에 복종한다라는 말이 겹쳐진다.
능동적 글쓰기
배움, 지식의 순환적 매핑
그리고 아름다운 것에 대해 함께 나누기.
작년 여름 누군가의 생일선물로 주었던 굶기의 예술 The art of hunger, 당시 내가 거의 마지막으로 샀던 기억이 난다.(그 이후 온갖 사이트를 뒤졌음에도 불구하고 절판되었다.) 오늘 아침 소피 꺌과 함께 쓴 책을 둘러보다가 "폴 오스터의 뉴욕통신"이라는 괴상한 제목의 책을 발견했다. 신간인 것 같지 않고(네로가 뉴욕에서 친필사인을 받아준 Travels in the Scriptorium이 가장 최신작인듯) 내용을 쭉 훑어보니 굶기의 예술의 인덱스와 일치했다. 그렇다, 굶기의 예술이 재번역되어 나온것이다! 반가운 마음도 있었지만, 내심 제목이 마음에 안든다. 뉴욕통신이라니!
암튼 몇 차례 읽고 곱씹으면서 오스터의 문장에 반한 것도 있지만 오스터가 가득 애정을 담고 누군가에게 자신이 사랑하고 좋아하는 작가를 소개하는 그 '헌사'의 글귀들에 마음이 흔들렸다. 이 책을 시작으로 수잔 손탁을 읽으면서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나의 지인들, 혹은 존경하는 자에 대해 강렬하고도 군더더기 없이, 애정을 담은 표현을 할 수 있을까? 라고 말이다. 굶기의 에술의 번역자인 최승자씨는 뉴욕 길거리에서 우연히 오스터의 이 책을 발견하고선 누군가에게 소개싶어주고 싶다라는 마음이 일었다고 했다. 그렇기에 번역을 자청하면서 책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함께 만든 사람같다.
수잔 손택은 문학 번역에 관해 이렇게 썼다.
작가는 무엇보다도 우선 독자입니다. 저는 독서에서 제 자신의 작품을 가늠할 기준을 얻습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저는 딱할 정도로 모자랍니다. 글을 쓰기도 전에 독서를 하면서 저는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더 많은 공동체, 문학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읽는다는 것, 기준을 갖는 것은 과거와 다른 것과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문학을 읽고 문학에 대한 기준을 갖는 것은 번역 문학과 관계를 맺는 것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투쟁하는 독자란 무엇일까?
배움에 복종한다라는 말이 겹쳐진다.
능동적 글쓰기
배움, 지식의 순환적 매핑
그리고 아름다운 것에 대해 함께 나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