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슬픔 저러하다 이름했습니다
고정희
어제 나는 그에게 갔습니다
그제도 나는 그에게 갔습니다
그끄제도 나는 그에게 갔습니다
미움을 지워내고
희망을 지워내고
매일 밤 그의 문에 당도했습니다
아시는지요, 그러나
그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완강한 거부의 몸짓이거나
무심한 무덤가의 잡풀 같은 열쇠구멍 사이로
나는 그의 모습을 그리고 그리고
그러다 돌아서면 그뿐,
문 안에는 그가 잠들어 있고
문 밖에는 내가 오래 서 있으므로
말없는 어둠이 걸아나와
싸리꽃 울타리를 만들어주었습니다
어디선가 모든 길이 흩어지기 시작했고
나는 처음으로 하늘에게 술 한잔 권했습니다
하늘이 내게도 술 한잔 권했습니다
아시는지요, 그 때
하늘에서 술비가 내렸습니다
술비 술술 내려 술강 이루니
아뿔사, 내 슬픔 이러하다 이름했습니다
아마 내일도 그에게 갈 것입니다
열리지 않는 것은 문이 아니니
닫힌 문으로 나는 갈 것입니다
친구는, 아빠가 죽고 나서도 그 물건들이 그대로 여전히 집 구석구석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가끔 아빠가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애써 가꿔온 식물들은 베란다에서 아이마냥 잘 자라나고 친구도 살고 하루도 가고 그렇게 일 년이라는 시간이 가버렸던 것이다 종종 할매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올 때면 빠지지 않고 말해주는 것이 누군가 나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것인데 처음에는 궁금했다가 후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리고 이번에 집에 와서 그 우편물들을 모아둔 상자를 할매로부터 건네받았다 한 단체에서 꾸준히 보내준 소식지였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어느 행사장을 급히 빠져나오면서 방명록에 써둔 주소가 시발점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한 달에 한 번 씩 손바닥만한 크기의 접지 서너장짜를 이어서 손으로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엇비슷한 소식들이 적혀있다 매호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눈에 띄는 사건들은 없다 오늘 아침에는 조금 더 찬찬히 들여다봤더니 저 시가 적혀있었다 오랜만에 다시 읽는 시 누군가들을 떠올리게 하는 문장들 그리고 알 수 없는 그리움을 느끼게 하는 글자의 모양들,이 담겨진 편지 늘 누군가가 보고싶은 걸까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