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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의 기억

Day_dreaming 2014. 2. 15. 07:29

특별히 정문, 후문도 없고 자전거가 모여있으면 주차장이되고 누군가 서서 담배 태우면 이야기가 시작되는 학교에 다닌다. 학교 본관 좌측에는 실크 스크린 워크숍 공방 장인이 붙혔다 띄었다를 반복하는 학교 알림 포스터가 늘 걸려있다. 요며칠 분주하게 오갔어도 유심히 보지않고 지나다 오늘에서야 말귀를 알아챘다. 문구는 감사합니다, 야스퍼. 글자와 함께 배치된 그래픽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쓰레기통이였다. 오랜시간 청소일을 하셨던 야스퍼의 퇴임을 기념한 포스터였다. 야스퍼는 이 학교에 와서 내게 처음으로 인사를 건넸던 그 분이었다. 그는 학교에 오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인사를 나누는 그 빨간 후드티의 할배이다.

본관에 들어서자 리셉션 데스크에 사진 한 장이 붙어있었다. 주인공인 야스퍼를 제외한 학교 스테프 대부분이 모여 찍은 사진이었다. 그는 내 선생님과 같이 올해 정년을 맞은 나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암선고 때문에 그만두신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고보니 최근 그 분을 뵌 기억이 없고, 마지막으로 봤을 때에는 사뭇 피로해보였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야스퍼, 라는 이름을 가진 이 시대의 사람이 몇 명이나 존재할까. 겨울처럼 추웠던 첫 해 늦여름, 학교 건물 곳곳에서 마주쳤던 그 분이 내가 아는 야스퍼라는 이름을 가진 유일한 사람이다. 전교생이 다 모여도 한 공간이면 충분히 소화하는 작고 아담한 학교임에도 늘 횡하고 춥게 느끼며 지난 3년을 보냈다. 그럼에도, 어떤 한 사람은 학교의 사계절의 변화를 몇 십 년째 보면서 묵묵히 지냈다는 생각을 하니 아득하기만 하다. 무엇보다 그 시간들을 감사와 존경으로 표시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이 공간이 다르게 느껴진다. 


이동하더라도 기억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삶이면 좋겠다. 작은 것, 큰 것이든 지켜보고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들속의 살고싶다. 너무 오래되서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이야기들이 오가도 서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거리에서 살고싶다. 오래전부터 들었던 이야기를 오늘에서야 다시 떠올린다. 배움은 시간의 품이 드는 법, 헛발짓 하다 간혹 제자리를 찾는다. 때문에 기억은 누군가와 함께일 때 말할 수 있다. 당신이 거기 있었다는 것을 나는 기억한다,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