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졸업전시를 돕고 옆에서 지켜보면서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학교 곳곳에 선언문처럼 붙어있는 DO IT YOURSELF는 졸업하는 순간까지도 정언명령처럼 따라붙는 것이다 실은 처음 이 학교에 입학했을 때 언어와 문화가 낯선것은 둘째치고 기본적인 오리엔테이션을 받지 못한채 모든 것을 일일히 알아서 해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버거웠다 물론 내가 편입의 형태로 학교에 들어선 것이 큰 이유겠지만 의례다 알아서 하려니 하며 넘기는 것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모르는 상황에서도 선뜻 누군가를 붙잡고 묻고 늘어지고 결국 자신의 일을 완성시키는데 사람을 끌어들이는 기술까지 스스로 습득하게 되지만 내 경우 정반대로 1년을 보냈다 이제야 어디에 가면 인쇄를 할 수 있고 망치를 빌릴 수 있고 도서관 대출일은 언제까지인지를 알게되었지만 오랜시간이 걸렸다 이건 내 개인의 성향탓이 있지만 모든것을 스스로 알아서해라, 는 식의 무거운 독립심을 기르게 하는 학교의 불가피한 불친절함이 한몫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게들 길게는 4년 짧게는 2년정도의 과정을 마무리하는 졸업전시가 어제 열렸다 7월의 햇살은 온데간데 없고 무거운 비가 도로를 적셨다.
공식 오프닝 전 이틀간 외부 게스트들-대부분 큐레이터로 구성된-이 와서 1차 심사를 하고 지도한 선생들의 평가로 합산한 최종평가회 자리를 가졌다고 한다 친구에게 들은바로는 큐레이터라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 아주 많이 피곤했다고하는데 대략의 상황은 이러했다 그들의 방문목적이 학생들의 작품을 평가하고 비평의 언어로 전달하는 것은 분명하나 짧은 시간동안 불필요한 질문 혹은 기존의 작품들과 비교분석하면서 정작 개개인의 작품을 애써서 들여다보려하는 시도나 자세가 별로 없었다는 것, 한마디로 영혼없는 대화를 나누고나니 기운이 다 빠진다는 것이다 어제 공식 오픈 전 조금 일찍 도착해 전체적으로 둘러봤다 어떤 이들의 작업은 아이 웨이웨이와 아니쉬 카푸르 등의 기성작가의 작업들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대체적으로 스케일이 무지크고 눈에 쉽게 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뭔가 그런 작업들을 쭉 둘러보고나니 침울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서 나 역시 그 큐레이터라는 사람과 같은 시선에서 보는 것인지 혹은 기성작가들이 그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행세할 수 있는 레퍼런스임이 확인된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언어는 대체적으로 세련되기는 했으나 개인의 성향이 드러나지않고 잘 만든 학생 비엔날레 같다, 라는 느낌이 든 것이다 좀 지나친가 내가 뭘 안다고 이러나 하면서 건물을 빠져나왔다.
내가 속해있는 과의 건물에서는 대부분 디자인과 관련된 학과의 작품들이 전시중인데 그곳은 사뭇 분위기가 달랐고 적잖이 놀랐다 한마디로 너무 충실한 열심히한 작품들이 그득그득 들어앉아있는 것이었다 갑자기 눈이 크게 떠지고 찬찬히 살펴보고 시작했다 작가마다 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와 질문들을 풀어놓은채 끝나는 것들과 거기에서 좀 넘어서 시도를 하려는 흔적이 보이는 작품, 이 두 가지가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후자의 경우의 작품들에서 적잖은 감동과 기쁨을 느꼈는데 작업을 한 본인들도 충분히 그 것을 알고 있으리라 그러면서 뭔가를 제대로 안다 그렇지 않다를 넘어서 타인에게 말을 거는 작업들이 분명이 존재하고 그럴 때 제대로 된 비평이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념어로 열거된 사전같은 말들을 하는 비평은 쓸모가 없다 제대로 조우하고 느끼고 말해주는 것, 즉 감응할 수 있는 자세의 사람만이 비평을 할 수 있고 그런 작업들만이 작업이라 부를 수 있는 것 아닌가.
며칠 전 김수영이 썼던 이 문장이 새삼스레 떠올랐는데 어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다시 한 번 마음속을 훑고 지나갔다
"그대는 내가 시인이라는 것을 모른다. 그러한 그대를 구출하는 길은 그대가 시인이 되는 길밖에는 없다. 시인은 모든 면에서 백치가 될 수 있지만, 단 하나 시인을 발견하는 일에서만은 백치가 아니다. 시인을 발견하는 것은 시인이다. 시인의 자격은 시인을 발견하는 데 있다. 그밖의 모든 책임을 시인으로부터 경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