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 선생의 전시를 보러가는 길에서부터 왜인지 모르게 가슴이 너무 뛰었다 바람이 거센 탓도 있고 실제로 작업과 함께하는 할매의 모습은 처음이라 더 그랬을테지 게다가 친구까지 동행한터라 왜인지 모르게 매일 지나다니는 길 조차도 잃을 것 만 같은 기분이 사로잡혔다 생각보다 굉장히 작은 공간이었고 아니나 다를까 들어서자마자 보인 할매는 누군가를 붙들고 서서 열심히 이야기를 하고 계신 중이었는데 아는체를 할까하다 그런 순간 즉 타이밍이라고 말하는 것을 매번 잘 잡지 못하는 나로서는 그저 두리번 거리기 바빴다 어느새 할매의 시선에 포착된 내가 그녀의 손에 이끌려 특유의 말투와 제스처로 동행한 친구가 있는지 없는지도 살필 겨를 없이 그녀나 나나 정신이 없었다 마치 외는 듯한 그녀의 말투에서도 어딘가 떨리는 느낌이 전달되어왔다 아 이 할매가 지금 떨고 있구나 라고 느끼니 귀엽기도 하면서 나까지 긴장되었다.
너무 추운 상태로 몇 시간 길밖에 있다가 들어온터라 레드와인을 보자마자 단숨에 들이켰는데 그 때 부터 뜨거운 공기가 폐로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연이어 사람들이 속속 도착하고 나는 또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꿔다놓은 보릿자루마냥 옆에 서있었는데 그러다보면 또 할매의 시선에 포착되어 이런저런 말들을 귓속말처럼 연설을 해대셨다 결국 그녀가 내내 긴장하다 마치신 스피치를 묵묵히 듣고 있다가 나는 문득 이 사람이 진심으로 이 모든 과정들이 진심 진실 떨림의 과정이었구나, 를 느끼고 나니 더 말문이 막히며 눈만 멀뚱멀뚱했다 그녀 주위를 감싼 여러 사람들의 겹사이에서 나는 그저 가만히 서있었지만 그냥 좋았다 저 나이 되어서까지도 긴장과 설렘이 교차될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오래 할 만 하겠구나,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멀찌기 할매의 남편이 이리저리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노인네라도 워낙 장신이시라 굽은 등을 펴지 않아도 자신의 와이프가 어떻게 사람들과 대화 나누고 있는지 눈치 챌 정도로 날카로운 눈매로 이리저리 둘러보는 것을 엿봤다 하 저 커플은 참.
빈말을 못하는데 언제부턴가 진심도 어떻게 드러내야 할 지 깜깜할 때 가 많다 그럴 때 어떤 음악이라도 흘러나오면 좋으련만 남탓하고 미루는 버릇은 못 고쳐서 여즉 고생이다 그래도 모든 소음을 가로질러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간혹 있는데 매번 망설이다 뭍혀버린다 사무친다, 라는 표현이 있는 것 처럼 아직 그 뜻을 헤아릴 정도로 뭔가를 안다 겪었다 할 수 없는데 가끔 가슴이 아파오는 것은 느낀다 말 못해 생긴 화병이 아니라 말해놓고 후회드는 상황이 더 많은 상황이고 나이라 이걸 뭐라 표현해야 하는가. 잠자코 가만히 있다보니 주변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리고 시끄럽다. 조화로운 소리라는 건 무얼까, 하고 또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