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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리새우와 칭따오가 준 교훈

Day_dreaming 2011. 4. 16. 01:02

한참만에 켜본 티브이에 노브레인이 여름을 외치고있다 나 방금 전 여의도에서 눈발같은 벚꽃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는데 벌써 여름이라고 하면 어쩌시라고요 게다가 이 새벽 어찌그리 기운들이 뻗치시나요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눈을 부릅뜨고 무대에서 방방 여름 알겠다고요 봄 다음 여름인 것 다 안다고요


그런데 말이요들 지난 사일 동안 밥 벌이 때문에 지난 십 년 동안 어떤 팀 아카이브 정리를 하다가 난 참 많은 교훈을 얻었다오 맞아요 모두들 십 년 전에는 정말 팔팔했어 그 때에는 과감히 모두들 거리로 뛰쳐나와 롹을 외치고 청춘을 뽐내고 지금은 사라진 와우교 기차길을 걸었어 흑백의 시간은 없었다 모든 것들이 색깔을 뿜어냈어 홍대는 번쩍하는 건물보다 반짝거리는 사람들이 있었지 그들이 이글거리는 눈빛을 뿜어내며 마이크를 씹어삼키듯 모두들 외쳤다 우리가 여기있다 라고


어쩌면 그렇게 우리는 그런 시절을 잊었을까 사실 나는 그 때 방년 십 팔세 였든가 밤새 걸어도 시간은 모자랐고 벽에 붙은 네온사인 간판들에 새겨진 글자들을 쳐다보며 세상을 읽어갔지 어느새 그 길이 너무 익숙해져갈 때 눈 감고도 몸이 그 자리에 다다를 지경에 이르렀을 때 나는 이미 거기 없었다 내 정신은 어따 버려뒀었지


그런데 말이요들 지난 사일 동안 다시 그 길을 걸으며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면서 목련이 발광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배웠다 오늘 정말 오랜만에 목소리 큰 여자를 만났다 말하고 있는 그 순간에도 하고 싶은 말이 생각나서 말이 막 빨라지는 사람 누군가가 말 할 틈 주지 않으면서 짖궃게 그러니까요 토론해봅시다라고 말하는 이쁜 여자였어 어느 사내가 한 발언이 맘에 안 찼던지 말이 끝나자마자 입술을 바르르 떨며 사실은 사실은 그러면서도 끝까지 자기 할 말 다하는 그런 뜨거운 여자였어 얼마만에 보는 매력적인 사람이던지 한 마디로 젊더라 나 보다는 나이가 많다는데 손끝이 눈빛이 요동을 치더라 심장이 팔딱거리는게 살아 숨쉬는게 나한테까지 느껴질 정도였다니까 대단하더라 한숨쉬지 않더라 끝까지 싸우겠다더라 이 세상에서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서 그렇게 끝까지 고개를 떨구지 않더라


나는 간밤에 꿈속에서 누군가에게 온갖 변명을 늘어놓았지 혁명가도 노동가도 쓸모있는자도 도사님도 못 되서 죄송합니다 그릇이 조막만해서 간댕이가 작아서 눈물만 많아서 머리만 돌려대서 손가락만 두들겨대서 죄송합니다 또 죄송합니다 라고 그렇게 밤새 슬피 울었다


노브레인이 청춘 구팔을 외친지 벌써 십년이 지났는데도 내가 자판을 두들긴지 십 분이 넘어갔는데도 오늘 같은 밤에는 뜨겁게 놀아야 한다고 여즉 소리지르고 있다 그새 누군가 결혼해 아이까지 생겼다는데 노래하고 청춘을 외친다 연남동 굴다리에 안개가 잔뜩 껴있더니 집에 갈 즈음 되어 싸악 가셨다 사일 동안 나는 사람들을 열심히 보고 미워하고 도망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디선가 팔딱거리는 모든 것들에 대해 감사한다 마지막까지 교훈을 주시네 저들이 외친다 넌 네게 반했어

그런데 나는

난 네게 반할래, 반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