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에는 '화병'이라는 말의 뜻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뭐 지금은 잘 아냐라고 물으면 선뜻 대답은 못하지만 짐작은 할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할매나 아빠는 체구가 작은 편이고 살집도 없는데 유독 더위를 많이 타며 속이 타들어간다는 말을 자주했다. 체질상 내장기관에 열이 많아서 이겠지만 여러모로 봤을 때 성질이 한몫하는게 틀림없다. 그에 비해 엄마는 낙천적인 편이고 피부도 매끈하다. 성질이야 어려서부터 할매 아빠와 같은 계열이라 뒤틀리는 일이 있으면 몸이 알아서 반응해 앓아눕는다. 여기와 혼자 지내면서 자주 아픈것도 성질머리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안다. 오늘은 우스우면서도 황당한 방식으로 몸에서 반응을 했다. 간밤에 누군가와 입씨름을 벌였는데 평소보다 단단히 화가난 상태였다. 하지만 속시원히 말은 잘 못하고 답답해하다 잠에서 깼는데 글쎄 입주위에 뾰드락지인지 벌레에게 물린 것인지 잔뜩 부풀어 올라있었다. 사과를 씹으려 입을 크게 벌릴 때 조차 욱씬거려서 괴롭다. 꿈속에서 오른 독이 입주위에 내려앉은 건지 몰라도 당황스럽다. 나이들면 느긋해져가고 여유로운 마음을 먹게 된다는 말은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쩌면 더 이상 싸우고 소리칠 기운이 없어 가만히 있게되는 것은 아닌가 싶은거다. 뭐든 저절로 획득되는게 없는 법이다. 때문에 나이들수록 안다고 지례짐작 할수록 코 깨질 수 있으니 내 속내를 잘 들여다봐야 하는 것이다. 그나저나 부어오른 독기가 가라앉으면 좋으련만. 꿈에서 다시 노력해야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