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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닌걸 알면서

Day_dreaming 2011. 4. 17. 10:49
평일에도 늘 북적거리지만 주말에는 사람들이 작정하고 병원을 찾는 거겠지. 환절기면 늘 고생하는 목감기를 참기엔 좀 많이 괴로워서 이비인후과에  갔다. 예닐곱 평 남짓한 공간의 풍경, 대기자들 대기자들을 위한 잡지들 대기자 명단을 표시하는 최신 LED 모니터 등등 대기자이자 환자들이 공간 반을 진치고 있더라. 이 모든 것들이 진료실과 어떤 문이나 파티션 없이 모두 뒤섞여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지만. 어디 수퍼마켓 오픈 행사에서 받아온 모양인 풍선을 들고 대여섯살 배기 남자아이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쉴 새 없이 그르렁 거리는 소리를 향해 쳐다보니 남자애가 엄마랑 장난을 치고 있었다. 내 어릴 기억에 병원이나 식당같이 사람들 많이 모인 장소에서 애들이 입을 벌리기 시작하면 해당 부모들이 더 큰 소리로 입을 다물게 하고 호되게 야단쳤는데 이 사람들은 자기 애들이랑 같이 떠들고 놀고 있더라. 가만히 얼굴을 보니 엄마들이 굉장히 젊어보였다. 아줌마들의 나이는 본디 짐작하기 어려울 뿐더러 아이가있는 순간 그들에게 20대, 30대 이런 구분들이 별 의미가 없는 법이다. 지금껏 아줌마들은 나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부류의 성인들이라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나도 그 언저리에 있더라. 물론 교차점이 없지만 말이다.

내 앞에 젊은 부부가 딸 아이를 데리고 앉았다. 엄마는 좀 산만해보이고 립라인을 제 입술 보다 크게 그려 어색한 건지 눈두덩이 색조화장이 과했던 건지 팔레트같은 얼굴을 들고 쉴 새 없이 두리번 거렸다. 남편이자 아빠로 보이는 사람은 아이를 옆에 앉혀두고 뭔 동화책을 열심히 읽어주었는데 아이는 고개를 끄덕끄덕 하나도 지루하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기 아빠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여자는 둘 사이의 교감이니  부모들의 역할이 자기 새끼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줄은 별상관없다는 투로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더니 자기 이름이 호명되자마자 맹렬하게 의사에게 돌진했다. 남자는 아이에게 동화책을 계속 읽어주고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한참 보고있었다. 나는 또다시 어느 순간들로 가고 있었다. 서너 살 짜리 아이에게 악의 꽃을 읽어주는 아버지도 없었고, 봄이 왔다며 자전거 바구니에 나를 앉혀두고 논둑길을 내달려준 아버지도 없었다. 나는 동화책을 읽어주는 저 남자의 따뜻한 시선이 아이에게 이어지고 그 아이가 요람속에 있는 것 처럼 편안하게 웃는 장면을 보고 또다시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언젠가 사라지게 될 감정들이 내 안에 무수히 많을거라 생각하지만 절대로 변하지 않는 사라지지 않을 것들이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증오와 질투와 애뜻함과 서글픔이 부침개 뒤짚듯 안 된다는 것을 안다. 나를 저 둘 사이에 끼워넣어 새로운 가족극을 할 마음은 없다. 등장인물만 바뀌고 상황은 늘 반복적인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런 상황극에 눈길이 가고 나는 늘 그 주변에 있다. 문제는 언저리에 있기가 고되고 힘들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또 잘 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일상이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벤트인 것. 그런데 어린아이가 아빠에게 사랑받고 싶어하는 것, 따뜻한 눈길을 한 번이라도 받아보고 싶어했던 것이 그리 큰 일인가, 욕심인가.